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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는 지글지글 속에 산다
고은진주
꼬리를 권한다
꼬리는
헤쳐 나가는 수고도 분탕질도 들어 있다
꿈틀거림과 기력
꼬리에 뭉쳐진다
꼬리가 웃전이다
어떤 손아귀든 꼬리잡기는 힘들다 꼬리 잡았다가 놓친 날에는 번드러운 손 내밀 수 없어 미끈미끈 걸어야 한다
아버지, 실장어 잡아 온 새벽이면 뜰채로 떠서 머릿수를 세었다 하나 둘, 어랏차 아흔아홉까지의 실가닥은 가늘고 꼬물꼬물했다 쓰다 남은 오빠의 공책 안에서 떼 지어 몰려다녔다 시장 나가는 날짜별로 백 마리씩 울타리쳤던 새끼들, 못 채운 울타리 안과 겉을 헤엄쳐 다녔다 요리조리 실밥 터졌다 바늘귀 어두운 아버지가 몇 번이고 새로이 꿴
우리 남매들은 꼬리의 학자금 출신이다
오랜만에 식구들 함께 앉아 장어를 굽는다 장어는 민물로 한번 바닷물로 한번 번갈아 가며 옆으로 휘는, 엉킨 물 뭉치 풀어주는 존재 갓 풀리기 시작한 오빠가 꼬리를 권한다 꼬리를 잡고 놓지 않던 아버지 등 휘어지고서야
지글지글 즐겁다
―시집 『아슬하게 맹목적인 나날』(여우난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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