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찬밥 /박지웅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0. 1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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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

 

박지웅

 

 

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엄마라는 가엾은 풍습을 아네

나를 낳은 뒤 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여인

 

오늘은 목단 이불을 귓불까지 쓸어올리고 잠든 섣달

흰머리 쓸다 설워진 이야기도 어느덧 늙어

 

안을수록 흘러가는 당신에게 깃들던 아득한 열 달

 

새끼와 입맛 맞추느라 입덧하고

살과 뼈를 밀어올려 내 보금자리 마련한 날들

 

몸속에 불을 놓아 심장을 짓고 몸 안에 기러기 풀어 피붙이 눈을 띄우던

한때 당신은 네 개의 무릎을 가진 건강한 짐승이었네

 

눈 내리는 섣달 밤바다와 한 이불 쓰고

가랑이로 고래 드는 꿈을 꾸는지 스물여덟 새벽으로 돌아갔는지

 

이부자리에 찬밥 한 공기 남아있네

 

 

 

―시집『나비가면』(문학동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