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일출
김정인
분만실 창을 가린 블라인드 사이로
수평선이 여러 겹 겹쳐 있다
나는 등 뒤로 딸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어둠을 찢고 나오는 우렁찬
햇살 기다리고 있다
해가 내게 당도하려면 울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생각
산모는 해를 밀어낼 통로를 여느라 제 살 찢는데
혈압 체크하던 간호사는 갈 길 멀었다는 듯
수액 빠진 링거 다시 갈아 끼운다
견딜 수 없이 조여드는 가슴
딸과 나의 공통분모는
탯줄의 출구를 묶고 번진 피 아물기를 기다리는 일
안이 젖은 고무장갑 뒤집어 말리듯
항문으로 온 힘 밀어내는 소리 들리는데
‘머리가 3센티 보여요!’
떠오르는 그 해 눈부셔 눈부셔 차마 바라보지 못하다가
으앙, 터진 울음 받아 올리다
―『유심』(2011, 3/4월호)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모든 마틸드 /이화영 (0) | 2021.10.18 |
---|---|
버드나무 잔가지 /권순자 (0) | 2021.10.18 |
백록담 휘모리 /신재희 (0) | 2021.10.14 |
찬밥 /박지웅 (0) | 2021.10.14 |
장어는 지글지글 속에 산다 /고은진주 (0) | 2021.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