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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대로 된다는 것
김제김영
될 대로 되라는 말
참 무책임한 말 같지만
지구의 모든 실개천과 그보다 더 큰 강들과
천년을 넘게 걷고 있는 옛길들,
가을걷이 끝에 꼭 입 닫고 있던 곡식들이
몇십 배, 몇백 배로 불어나는 일 그거,
알고 보면 다 될 대로 된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힘의 순차를 세상은 힘겨운 듯하지만
불가역 앞에선 오히려 편안해진다
될 대로 되는 일은 순리의 첫 번째 말
욕심의 반대말쯤 되지 않을까
코카콜라 병이 용케도 비탈을 찾아
한 번은 반드시 굴러보는 일과
평생을 묵언하던 코젤 다크가 정수리를 따는 순간
한 번은 반드시 제 목소리를 내는 것도
될 대로 되는 일이다
냉혈동물인 방울뱀이 사막의 햇빛 아래
똬리를 트는 일도, 다 익은 열매가
끝내 땅으로 뛰어 내리는 것도
될 대로 되는
되고 있는 일이다
아무 힘도 없다고 하지만
찾아보면 이 순리에는 될 대로 되는 힘이 있다
온통 남의 힘을 뺏어 내 힘에 보탤 때
오직 내 편인 힘
나와 순리 사이를 돌고 있는
톱니바퀴 같은 내 힘이 있다
―웹진『시인광장』(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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