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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칼라 현상소
진창윤
해가 지면 남자는 달을 줍는다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남자는
사진 박는 것이 직업이다
가로등 아래 골판지 달 맥주병 달
자전거에 싣고 온 달들을 둘둘 말아
마루에서 안방까지 차곡차곡 쌓았다
월식의 밤, 열일곱 살 딸이 집을 나가자
달 칼라 현상소 간판 붙이고 사진관을 열었다
달이라는 말과 현상한다는 말이 좋았다
한 장의 사진에 밤하늘을 박아 팔고 싶어
달을 표적 삼아 카메라를 들이댄다
인화지에 찍혀 나오는 사진 한 장에서
달의 얼굴들을 아랫목에 말린다
디지털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코닥필름 회사 망한 지가 언제인데
아날로그 필름만을 고집하는 달 칼라현상소 남자
자꾸만 얼굴을 바꾸는 달을 좇는다
그의 앞마당에 쌓인 폐품들이
달의 얼굴로 처마에 닿아 간다
더 벗을 것도 없는 달, 고무대야 속에 담겨 있다
사진관 남자는 껍질뿐인 까만 얼굴
달빛에 물들라고 단단하게 비비고 있다
―시집『달 칼라 현상소』(여우난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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