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얼음에서 새에게로
최지원
새의 기원은 얼음이었을까
불면의 새가 녹슨 굴렁쇠를 굴리는 동안
웅크린 종이는 뒤집히지 않아
종이 아래는 녹지 않고 그대로인 얼음
목련 나무에 묶인 개는
꼬리를 물고 제자리를 맴돌다
여름 한나절이 컴컴한 어제에 함몰되고
종이를 뒤집을 수 없어
새의 겨드랑이 아래, 내일이 잠들어 있다
꼬리는 풀리지 않아
주둥이를 물고 늘어지는 동그라미
시작에게 밀어 넣는 발끝은
연속의 파문으로 뫼비우스 띠를 굴리고
얼음의 기원은 새였을까
뒤집히지 않았던 의문들이
자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때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비스듬히
아래를 위로 밀어 올리는 녹슨 지구
―시집『얼음에서 새에게로』(시산먁, 2021)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전한 우연 /려원 (0) | 2021.11.16 |
---|---|
귀와 뿔 /정현우 (0) | 2021.11.16 |
좌우 연대기 /최지원 (0) | 2021.11.16 |
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 /임혜신 (0) | 2021.11.15 |
피 빼고 /서봉교 (0) | 2021.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