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얼음에서 새에게로 /최지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1. 1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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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서 새에게로

    

최지원 

 

 

새의 기원은 얼음이었을까

 

불면의 새가 녹슨 굴렁쇠를 굴리는 동안

웅크린 종이는 뒤집히지 않아

종이 아래는 녹지 않고 그대로인 얼음

 

목련 나무에 묶인 개는

꼬리를 물고 제자리를 맴돌다

여름 한나절이 컴컴한 어제에 함몰되고

 

종이를 뒤집을 수 없어

새의 겨드랑이 아래, 내일이 잠들어 있다 

 

꼬리는 풀리지 않아

주둥이를 물고 늘어지는 동그라미

 

시작에게 밀어 넣는 발끝은

연속의 파문으로 뫼비우스 띠를 굴리고

 

얼음의 기원은 새였을까

 

뒤집히지 않았던 의문들이

자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때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비스듬히 

 

아래를 위로 밀어 올리는 녹슨 지구

 

 

 

―시집『얼음에서 새에게로』(시산먁,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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