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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파프리카
홍계숙
하물며 아프리카 파프리카,
서로 닮았다고 하면 하관下顴이 닮은 거라는데
엄마는 나를 파프리카라고 불렀어요 새파랗게 울고 노랗게 자지러지다 붉게 버둥거리던 어릴 적 나를
아프리카를 떠올리며 캔버스에 파프리카를 그려본 적 있죠
원색은 적도와 가까우니까 물감을 듬뿍 묻혀
꼬박 하루를 물에 담가도 물이 빠지지 않는 色色은 얼마나 덧칠을 해서 태어난 걸까요
아프리카표범이 초원의 노을을 등에 걸치고 붉게 타올라요
빨간 파프리카는 아프리카
싱그러운 초록 곁에 부드러운 노랑, 따뜻한 주황 뒤에 달큼한 빨강
파프리카는 표정이 다양해서
노랑은 봄날의 조언, 주황은 햇살의 깊이, 빨강은 가을의 직언이죠
파프리카는 어쩌면 그토록 선명한 의견을 매달았을까요
달리는 것들은 빨강에서 멈추죠 계절도 절정으로 치달아 가을도 노을도 그 종착지는 파프리카
벌어진 석류도 화살나무 열매도 벚나무 잎새들도
오후를 술에 익사시킨 세렝게티 도마뱀도
태양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서성이는 서쪽
최초의 빛깔을 간직한 아프리카, 죽음은 원색의 깊이에 닿아있고
파프리카를 빠져나온 생각의 꼭지가 가지로 들어가 뿌리로 흘러내려요
하얀 캔버스 위를 달리는 아프리카
파프리카에 도착할 때까지
―계간『시산맥』(2022년 봄호, 비회원 공모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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