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진흙길 /남연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2. 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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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길 

 

남연우

 

 

겨울이 물러갈 적에

언 땅을 치대고 반죽하는

맨발의 뒤꿈치를 보라

 

얼음이 간직한 습기

얼비치는 온기 한데 어우러져

숨죽였던 욕망이 구두창에 꿈틀대며

질퍽, 젖어 가는 길

 

진흙판 쐐기문자

고뇌하며 지나간 바퀴 자국을 보라

끈끈이주걱이, 아우성치는

시간의 무게를 보라

 

살아 움직이는 이 길은 성스러운 길

성지 순례길에 버리지 못한

허물, 슬쩍 흘려두고 가자

 

머드 목욕하는 야생동물같이

진흙길을 지나가면서

내 몸을 문지르자

쓱쓱 비벼가며 가자

 

새롭게, 새롭게

먼 허공을 날아온 빛을 만나자

 

 

 

―『시와소금』(2022,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