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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길
남연우
겨울이 물러갈 적에
언 땅을 치대고 반죽하는
맨발의 뒤꿈치를 보라
얼음이 간직한 습기
얼비치는 온기 한데 어우러져
숨죽였던 욕망이 구두창에 꿈틀대며
질퍽, 젖어 가는 길
진흙판 쐐기문자
고뇌하며 지나간 바퀴 자국을 보라
끈끈이주걱이, 아우성치는
시간의 무게를 보라
살아 움직이는 이 길은 성스러운 길
성지 순례길에 버리지 못한
허물, 슬쩍 흘려두고 가자
머드 목욕하는 야생동물같이
진흙길을 지나가면서
내 몸을 문지르자
쓱쓱 비벼가며 가자
새롭게, 새롭게
먼 허공을 날아온 빛을 만나자
―『시와소금』(202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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