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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화엄
박위훈
배추 결구의 완성은
산발한 머리통을 끈으로 묶어주는 것
결구 된 배추가 화엄을 이룬 부도浮屠 같다
아버지는 생갈치를 넣자 하고
어머니는 닦달해놓은 밴댕이를 냉동실에서 꺼낸다
아내와 말로만 거드는 딸내미
생새우를 다진 게 시원해서 좋단다
당신은? 눈으로 묻는 아내에게
오젓, 육젓, 병어젓, 황석어젓도 다 싫고
‘당신 젓’뿐이라고 농을 던지자
아내의 얼굴이 양념 색깔처럼 붉어졌다
언제부턴가 아내가 신처럼 모시는 자가 있다
그는 대단한 종파의 교주다
‘김치냉장고’라는 신흥 교주에게
여자들은 평생 머리를 조아리며 산다
그래도 나는 항아리 속 김치가 더 맛있다
아내는 요즘 누가 김칫독을 땅에 묻냐며
지청구를 해대지만 싫지 않은 눈치다
해마다 섣달그믐이 지나면
이름으로밖에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가
달보드레한 김치를 맛보러 오신다
―시집『왜 그리운 것들만 더디 바래지는지』(상상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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