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흰 시간 검은 시간 /최정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4. 2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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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시간 검은 시간 

 

  최정란

 

 

   그 많은 흰 시간은 모두 어디로 가나 그 많은 모래알 같은 아침들그 많은 팥알 같은 저녁들그 많은 사약 같은 밤들내가 다 먹지 푹푹 내가 다 퍼먹고후루룩 내가 다 들이마시지 구석구석 시간의 뼈와 뼈 사이 알뜰히 내가 다 파먹지 시간을 뜸이 잘 들게 짓는 일은 내 몫시간의 가시 사이 살점을 잘 발라 먹는 일도 내 몫시간을 편식 없이 골고루 먹이는 일도 내 몫시간을 먹으며 나이를 먹지 이를 다 먹어버린 입을 오물거리지 잇몸으로 천천히 시간을 빨아먹지 느리게 느리게 시간을 녹여 먹지 도둑처럼 검은 시간이 부엌에 쳐들어오면 내가 짓지 않은 하루가 차려지지 남이 지은 새벽남이 지은 오후남이 지은 식탁은 간이 맞지 않아 남이 지은 시간은 먹을수록 허기가 지지 방금 저녁을 먹고도 안 먹었다고 시치미 떼지 밥 달라고시간 더 달라고고래고래 고함 지르지

 

 

시집독거소녀 삐삐』(상상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