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문득, 불러보는 혁명가
한혜영
마디마디
이어 붙여야 하나의 이름을 갖는 것들이 있지
시간과 시간,
사건과 사건이 모여 역사가 되는 것들이 다 그렇지만,
철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와
고통스럽게 끌고 다니던 척추를 부리고 있네
세월의 검은 뼈를 세느라
밤새도록 철커덕거리는 열차,
나는 지금 내 등에 깔린
무수한 침목枕木을 세며 가문을 달리는 중이라네
검은 입술을 가진 터널 입구에
아버지의 얼굴이 실패한 혁명군처럼 내걸리고
화통소리 한결 높이는 열차는
코끼리처럼 달려 아버지의 얼굴을 가차 없이 찢어버리네
하긴, 한낱 사소한
인생 때문에 역사가 멈출 수는 없는 법이지
시간이란 때때로 물이고 불이고 바람이고 광기니까
마디마디의 낱말,
문장과 문장으로 이어진 한 권의 책을 일으켜 세우는
아, 버거워 삐걱거리는 나의 척추여
누가 시대의 건반을 잘못 눌렀는가
한꺼번에 울음을 터트리는 내 마디마디의 뼈
지령도 밀명도 더는 오지 않는 이 시대의
외로운 혁명군인 나는 지금 어디를 달리는 중인가
―웹진『시인광장』(2022년 5월호)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걷는 땅 /함태숙 (0) | 2022.05.03 |
---|---|
세상 모든 슬픔과 치맥을 /김왕노 (0) | 2022.05.03 |
와각지쟁蝸角之爭* /이혜선 (0) | 2022.05.02 |
유사비행 /이혜선 (0) | 2022.05.02 |
이젠 봄을 훔쳐야 할까 봐요 /이서연 (0) | 2022.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