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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김희준[1994. 9. 10 ~ 2020. 7. 24]
사과꽃이 폈습니다 예쁜 걸 보면 마음이 험해지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흰꽃을 두고 험하게 울고 있네요 지나치기엔 애틋하고 사랑이라기엔 서사가 없습니다 언제 이렇게 되었나요 나는 무엇도 되지 못했습니다 시시한 어른일까요 철물점 앞에는 늙은 개가 묶여있어요 개를 갈라보면 나사 몇 개가 내장에 박혀있을 거예요 개의 눈물선은 기름이 그려둔 예쁜 것입니다 남자가 철제선풍기를 안고 옵니다 자전거를 먼저 팔아야겠지만요 남자의 입술이 개의 고환과 비슷합니다 세상 소용없는 것입니다 험해지지도 않고요 그러나 놀랍습니다 울고 있어요 나, 매번 이유를 달리합니다 만약 흰꽃 떨어지는 사과나무라면 염세적인 식물이 되겠습니다 철물점에 묶어두겠어요 못을 삼키겠어요 사과를 미워하겠습니다 나비에게 매몰찬 말을 하겠어요 당신의 그늘을 망가뜨리겠어요 잎사귀를 끊어내겠어요 정오를 한곳에 쥐고 있겠어요 초를 불면서 썩은 사과꽃을 되뇌겠어요 우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바꾼 번호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나는 홍서현이 아닙니다 4월은 내 생일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마음이 험해집니다 당신에게 떨어지는 꽃잎을 개연율 삼으면 안 될까요 유골을 어디서 찾아보는 것이 좋겠습니까 개가 혀를 내밀고 땅을 팝니다 발굴을 기다리는 홍서현이 되어봅니다
―계간『시와 편견』(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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