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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되지 못한 시
서상민
축사가 보이는 저수지 뚝방에 앉아 담밸 피웠다
제비꽃 민들레꽃 함부로 제방을 넘어서고
수면에 손을 담근 버드나무 머릿결을
바람이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는 완성하지 못했거나
완성할 수 없는 시에 대해 얘기했다
메타세쿼이아 어린 나무들이
팔려나갈 날을 기다리며
황토 위로 한철 그늘을 부풀리고 있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영각 소리를 들으며
사랑의 완성은 이별일 거라 생각했다
카페에 제비꽃처럼 민들레꽃처럼 마주 앉아 커필 마셨다
아직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본 적 없어서
노을 보는 걸 좋아했다
구름이 낮아진 날들을 예비하지 못한 채
저수지 표면에 떨어진 태양의 깃털들을 사랑했다
이별은 슬픈 거지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마주보며 웃었다
다시 찾은 저수지 뚝방에 앉아 담밸 피웠다
돌 몇 개를 저수지에 던졌다
소 울음 같은 긴 파문은
이승에선 본 적 없는 무늬 같았다
잠들었으나 꿈이 오지 않았다
―시집『검은 모자에서 꺼낸 흰 나비처럼』(시인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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