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유무(有無) /장옥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7. 1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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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有無)

장옥관


작은아버지 돌아가신 지 서너 해가 지났다
명절마다 고기 두어 근 끊어 찾아뵀지만 이젠 갈 수가 없다
부재 때문이라지만
딱히 부재라고도 할 수 없다 그 낡은 아파트 찾아가면 당장이라도 뵐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고기는 드실 수 없다
몸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몸이 없는 건 아니다
사촌이 자기 아버지를 고이 빻아 제 방에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빚 피해 필리핀으로 도망간 아우들 돌아오면
예 갖추어 보내드린다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건 저도 나도 다 안다
경제보다 섭섭함이 형제를 갈라놓았을 거라
짐작한다 섭섭함이 어디에 서식하는지 알 수 없다 섭섭함은 워낙 복잡한 얼굴 지녔기 때문이다
아내도 아이도 없는 사촌은 치매에 빼앗긴 노모를 모시고 산다 아니 노부도 함께 모시고 산다
노모가 노부와 말 주고받는지
알 수가 없다
따져보면 내가 뭘 아는지 알 수가 없다 나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ㅡ 『청색종이』 (202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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