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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생각
박소란
자, 이제 집으로 가자
길은 얼어 있고 날 선 바람이 불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집으로 갈 수 있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걷거나 뛰거나
아니면 그냥 날아서
주머니 속에는 한 움큼의 눈
언 눈물을 딴딴히 뭉쳐 몰래 넣어둔 것 같다
슬픔의 고약한 장난
지금은 겨울이니까
모두가 춥다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집으로 가자, 그래
집으로 가면
집으로 가면
주방에 따뜻한 물이 한 잔 있지 그 물을 마시면
나는 따뜻해진다
나의 날개는 물렁해진다 금방이라도 녹아 흐를 듯이
따뜻한 컵을 손에 쥐고서 후후 불면
모든 것이 입김처럼 떠간다
사라져 간다
집 안은 환하고 낯선 이의 꿈처럼
따뜻한 물은 뜨거운 물, 이제 막 뜨거워지려는 물
취한 듯 일렁이는 가스레인지를 생각하면
걸음은 더 빨라지고
어서 와 집이 코앞인데,
전화를 걸어올 수도 있겠지 오래 기다리던 누군가
내 늦은 귀가를 재촉하며 고장 난 벽시계를 초조하게 올려다볼 수도
뻐꾸기가 운다
마지막 울음인 것처럼
집으로 가자, 집으로
지금 이 순간
물은 잘 끓고 있겠지
불은 활활 타고 있겠지
ㅡ계간『문학청춘』(202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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