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집 생각 /박소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8. 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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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생각

 

박소란

 

 

자, 이제 집으로 가자

 

길은 얼어 있고 날 선 바람이 불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집으로 갈 수 있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걷거나 뛰거나

 

아니면 그냥 날아서

 

주머니 속에는 한 움큼의 눈

언 눈물을 딴딴히 뭉쳐 몰래 넣어둔 것 같다

슬픔의 고약한 장난

 

지금은 겨울이니까

모두가 춥다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집으로 가자, 그래

집으로 가면

 

집으로 가면

주방에 따뜻한 물이 한 잔 있지 그 물을 마시면

나는 따뜻해진다

나의 날개는 물렁해진다 금방이라도 녹아 흐를 듯이

 

따뜻한 컵을 손에 쥐고서 후후 불면

모든 것이 입김처럼 떠간다

사라져 간다

집 안은 환하고 낯선 이의 꿈처럼

 

따뜻한 물은 뜨거운 물, 이제 막 뜨거워지려는 물

 

취한 듯 일렁이는 가스레인지를 생각하면

걸음은 더 빨라지고

 

어서 와 집이 코앞인데,

전화를 걸어올 수도 있겠지 오래 기다리던 누군가

내 늦은 귀가를 재촉하며 고장 난 벽시계를 초조하게 올려다볼 수도

 

뻐꾸기가 운다

마지막 울음인 것처럼

 

집으로 가자, 집으로

 

지금 이 순간

물은 잘 끓고 있겠지

불은 활활 타고 있겠지

 

 

 

ㅡ계간『문학청춘』(202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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