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그 여자네 국숫집 /장은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8. 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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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국숫집

장은숙


​간판은 없다

가게 문 앞에 내놓은 이 빠진 국수 사발에
봄부터 가을까지 키 작은 꽃이 피어나고
겨울에는 눈밥이 고봉으로 쌓이는 집

비법의 육수도 없다
날씨 따라 계절 따라 간이 흔들리기도 하겠다
그날 마는 첫 국수는
죄 없이 배고픈 이들의 몫으로 달항아리에 뗀다

마음이 마른 면같이 부서지는 날은
<주인장 노을 보러 갑니다> 써 붙이고
저녁 장사 접는 날도 있다

면발보다 사람 고파 드는 손님
묻지 않아도 긴 안부 뽑아내면
경사에도 조사에도 다 배불리 먹으라
국수사리 수북이 부조하는 주인

국숫물 다스리듯 마음 재우고
면이 익어가듯 늙어가면 되겠다

 

 


시집 『그 여자네 국숫집』(북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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