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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국숫집
장은숙
간판은 없다
가게 문 앞에 내놓은 이 빠진 국수 사발에
봄부터 가을까지 키 작은 꽃이 피어나고
겨울에는 눈밥이 고봉으로 쌓이는 집
비법의 육수도 없다
날씨 따라 계절 따라 간이 흔들리기도 하겠다
그날 마는 첫 국수는
죄 없이 배고픈 이들의 몫으로 달항아리에 뗀다
마음이 마른 면같이 부서지는 날은
<주인장 노을 보러 갑니다> 써 붙이고
저녁 장사 접는 날도 있다
면발보다 사람 고파 드는 손님
묻지 않아도 긴 안부 뽑아내면
경사에도 조사에도 다 배불리 먹으라
국수사리 수북이 부조하는 주인
국숫물 다스리듯 마음 재우고
면이 익어가듯 늙어가면 되겠다
―시집 『그 여자네 국숫집』(북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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