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저녁연기 /박희선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2. 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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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연기

 

박희선

 

 

찐 고구마 두 개

두유 한 통으로

복사꽃 그늘에서

새참을 먹었다

내 뱃속에서 밥 달라고 보채는

청개구리 울음을 간신히 잠재웠다

 

온종일 쇠스랑으로 감자밭만 장만하고

빈 지게만 지고 돌아오는데

누가 내 허리에 천 근 납덩이를 매달았나

두 무릎에서는 자갈자갈

자갈밭 밟는 소리가 너무나 아팠다

 

산 그림자 속에

외딴집 굴뚝에 저녁연기가 꿈처럼 올라간다

지난겨울 큰 수술을 받은

아내가 일어난 것일까

아침에 차려주고 온 흰죽을 다 비웠을까

잠자던 아궁이에 누가 불을 지피는가

 

누군가 부엌문을 반쯤 열고 나와

한 번만 웃어주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나

봄 하늘 초승달이

내 마음 먼저 알고 까르르 웃는다

 

 

 

―『문학과창작』)2022-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