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 /박희선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2. 2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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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

 

박희선

 

 

늙은 소나무에 세 들어 사는

할미새 할미한테서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왜 보름째나 밭에 올라오지 않느냐

몹시 궁금해서 전화를 했단다

아내가 몸이 안 좋다고 했더니

지난봄에 큰 수술한 곳이

지금도 많이 아프냐고 되물었다

 

감나무와 호두나무 대추나무들

고라니와 멧돼지,

곤줄박이와 콩새 산비둘기까지도

내가 보고 싶어 모두 안달이 났다고

하얀 거짓말까지 보탰다

 

우리 보리밭은 잘 있느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에 고라니 큰삼촌이 돌아가셔서

온 집안이 조용히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 장날부터 호두나무 옆에

도라지꽃들이 만발했는데

자기는 보랏빛 꽃보다

흰 꽃이 더 예쁘다면서 혼자 웃었다

 

 

 

―시집「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詩와에세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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