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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
김이듬
폐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 년 중 며칠이라도
문을
닫아걸고 싶었을 것이다
호수는
수면이 온통 문이라서
비가 오면 비를 받고
바람 불면 물결치기 바빴다
빵 부스러기나 쓰레기를 던져 넣어도 막을 수 없었다
첨벙첨벙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와 구름과 측백나무까지
사방에서 투신하는 그것들을 사랑했다
단지 얼비치는 그림자인 줄 모르고
내부는 언제나 번잡했다
찬란했던 수련 군락도 다정했던 청둥오리 떼도 한때였다
문득 호수는 고마웠을 것이다
몰아닥친 한파가
그날 밤 호수는 얼어붙었다
이튿날 폭설까지 쏟아져 호수는 새하얗게 뒤덮었다
바깥에서는 전혀 호수 내부가 보이지 않았을 때
호수는 투명하게 내면을 응시하는 듯했다
비로소 무문관이 되어
자기 안에 서식하는 침묵을 보았다
스스로 수질을 살폈고
시꺼메진 바닥에 기겁했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다
걸어왔다
너는
저만치 호수를 밟고
―계간「시와 세계」(2022,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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