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추리/최재영
몇 년 전부터 동네엔 꽃이 피지 않는다
더는 뿌리내릴 수 없음을 눈치챘는지
마을은 흉흉한 인심만 가득 피워내고
새들도 더 이상 둥지를 틀지 않는다
이마에 붉은 적의를 둘러맨 사람들
눈빛에선 늘 회오리바람이 일고
봄 내내 마을은
현수막의 힘으로 펄럭거렸는지 모른다
이제 버틸 수 있는 건
오래 전 땅으로부터 얻은 이력뿐이라는 듯
생의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혀 있다
인화성 짙은 구호들이
마을의 안과 밖을 뜨겁게 달구는 동안
한두 채의 빈집이 더 늘어나고
봄은 한낱 허구였을까
마을 저쪽의 경계는 단단한 허공이다
꽃의 일정 또한 팽팽한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농수로가 막히자
외부와의 소통도 단절되어졌다
봄의 한복판에서 분주해지는 건 현수막뿐이다
-최재영 시집『 루파나레라』. (천년의 시작. 2010)
2010. 03.23 밤 22시 30분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아리/최재영 (0) | 2010.03.27 |
---|---|
루파나레라*/최재영 (0) | 2010.03.27 |
순장(殉葬) (0) | 2010.03.27 |
모든 꽃은 흔들리며 뿌리로 간다 / 강미정 (0) | 2006.02.23 |
유채꽃밭 - 정일근 (0) | 2006.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