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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뇽 수를 놓다/조용미
지율(知律), 계율을 안다
거짓되고 그릇되게 행함을 막는 율법을 안다는 이 말,
참으로 무서운 말 아닌가
내가 아는 한 비구니의 법명이 지율이다
천 명의 성인이 나온, 천 가지 연꽃이 핀 것 같은
천성산 (千聖山)
아래 내원사에서 조용히 수도하며 지내던
눈매가 그윽하고 맑고 단단한 사람
그 깊은 산 속 깨끗하고 차가운 물에만 산다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산다는 꼬리치레도룡뇽을 살리려고 생명을 내놓았다
형상이 있거나 없는 모든 것을 화엄이라 한다는데
산정에 펼쳐진 늦가을 화엄벌은 흰 눈이 덮인 듯 억새의 물결로 장엄해
관통 터널 공사도 도룡뇽 소송도 다 잊고 사람들 탄성을 지른다
이 화엄벌 늪에 지율의 친구 도룡뇽이 산다
갈색 등이 노란 점무늬와
별처럼 펼쳐져 있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꼬리치레도룡뇽은 겨울잠에 들었나
화엄벌의 화엄세계가 바로 너의 우주인데
팔색조야 황조롱이야 청딱따구리야 삼광조야
천성산은 천성산만의 근심이 아닌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지율(知律), 어둑해가는 부산시청 앞에 앉아 곡기를 끊고
도룡뇽 수를 놓고 있다
한 땀 한 땀의 바늘질로 뭇 생명을 살리려 하고 있다
-『문예중앙』 2004 겨울호
2010. 03.26 / 밤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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