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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 동시 - 제 5 편] 감자꽃/권태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3. 3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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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 동시 - 제 5 편] 감자꽃
권 태 응
자연에 순응하는 생명의 경이로움
장석주·시인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 일러스트=양혜원
〈감자꽃〉은 단순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진국이 우러나오는 수작이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냄이라는 진리와 더불어 종(種)의 명령에 순응하는 개체의 숭고함을 개시한다. 자주꽃 핀 데 하얀 감자가 달리지 않고, 하얀 꽃 핀 데 자주색 감자가 달리지 않는다. 무릇 생명 가진 것들은 그 종의 진실을 거스르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이 기적과 신비를 체험하며 이 우주 안에서 거대한 생명의 코러스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디 감자는 페루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안데스 산맥이 그 원산지다. 16세기에 유럽으로 건너온 뒤 18세기 말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사람과 감자는 전략적 호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감자는 사람에게 식량을 보태주는 대신에 사람에게서 더 많은 지배 영역을 얻어낸다. 여름 장마가 올 무렵 감자꽃이 핀다. 땅속에 숨어 사는 한해살이 풀 은자(隱者)는 "파보나 마나"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다. 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시인은 놀라고 경탄한다.

권태응(1918~1951) 시인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때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1년간 옥살이를 한 기록이 있다. 그 뒤 폐결핵에 걸려 고향에서 요양했는데, 그때 시골 체험이 알알이 든 동시와 동요를 많이 내놓았다. 아이의 손길까지 귀히 빌려 쓸 수밖에 없이 바쁜 수확기 농촌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시도 있다.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벼 멍석에 덤벼드는/ 닭을 쫓고//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양지쪽에 묶어 세워둔/ 참깰 털고//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뒤꼍에 오볼 달린/ 대출 따고"(〈막대기 들고는〉). 아이는 양광에 마르는 벼의 알곡을 쪼려는 닭을 쫓거나 참깨를 털어야 한다.

씨눈을 가진 감자알은 흙의 자양분을 끌어다가 둥글게 익는다. 이 성숙의 결과가 원만(圓滿)이다. 이 풍부한 땅의 부(富)를 산처럼 쌓고 인류가 공평하게 나눈다면 10억명의 사람들이 굶어 잠 못 드는 일은 없을 터다. 탐욕이라는 짐승들이 감자를 독점하려고 한다. 나는 태정이네 감자밭 둔덕에 쪼그리고 앉아 저 혼자만 잘살겠다는 이 짐승과 인류가 꿋꿋하게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1968년 충주 탄금대에 〈감자꽃〉을 새긴 노래비(碑)가 세워졌다.
감자꽃 (권태응 시 / 노래마을 최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