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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 동시 - 제 7 편] 엄마가 아플 때/정두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3. 3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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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 동시 - 제 7 편] 엄마가 아플 때
정 두 리
엄마 없는 생활의 '그림자'
장석주·시인


 

조용하다.

빈집 같다.



강아지 밥도 챙겨 먹이고

바람이 떨군

빨래도 개켜 놓아 두고



내가 할 일이 뭐가 또 있나.



엄마가 아플 때

나는 철든 아이가 된다.



철든 만큼 기운 없는

아이가 된다.

(1988)

▲ 일러스트=양혜원
일년 내내 휴일이 없고, 날마다 나라가 법으로 정한 노동시간을 넘겨 잔업 근무를 하는 일꾼이 있다. 이 노동자의 이름은 '엄마'다. 아비와 자식들은 엄마를 초과 근무로 내몰며 근로기준법을 예사로 위반한다. 가난하던 시절 우리의 엄마들은 식구들이 다 먹는 고기를 마다 했고, 한 그릇씩 공평하게 돌아간 자장면은 속이 거북하다며 먹성이 왕성한 동생에게 반 넘게 덜어주셨다. 미식이나 별미는 물리고 부엌에서 혼자 찬밥과 김치만 먹는 엄마는 식성이 까다롭고 유별난 분인 줄만 알았던 시절이 있다.

〈엄마가 아플 때〉에는 엄마 없는 생활에 얹힌 그림자가 잘 드러난다. 엄마가 아프면 아이는 추위를 타듯 활기를 잃는다. 엄마 없는 생활의 낯섦이 만든 걱정과 두려움이 아이를 사로잡는다. 어디 그뿐이랴. 엄마는 숙련된 노동자요, 지칠 줄 모르는 교육자요, 탁월한 육아 전문가요, 든든한 자산가다.

신은 모든 곳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엄마를 이 세상에 보냈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병이 났다. 병은 엄마가 내는 무급 휴가다. 엄마가 휴가를 내자 집 안팎에 일감이 쌓이고, 가정의 대소사가 차질을 빚는다. 집은 괴괴하고 세상은 어두워진다. 아이는 강아지 밥을 챙겨 먹이고, 바람에 날려 떨어진 빨래도 주워 개킨다. 아이는 부쩍 철이 든다. 그러나 아이는 "철든 만큼 기운 없"다.

엄마는 집마다 있는 심장이다. 죽을 때까지 그 박동을 멈추지 않는 심장처럼 엄마는 쉼 없이 일하고, 아플 때조차 고단한 몸을 뉘어 쉰 적이 없으니 오해를 살 만도 하다. 나 역시 엄마는 아픈 줄도 모르고 아파서도 안 되는 철인(鐵人)인 줄만 알았다. 떼를 쓰면 없던 옷과 신발과 용돈과 학비가 나왔으니 엄마는 마음만 먹으면 없는 것을 만드는 만능(萬能) 재주를 타고나신 분인 줄만 알았다. 엄마의 지갑은 화수분인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된 뒤에야 그게 엄마의 살이며 피라는 걸 알았다. 선사시대(先史時代) 이후로 엄마들은 행복추구권을 포기했다.

자식과 지아비의 행복을 일구려고 제 것은 접은 것이다. 어떤 새는 제 몸을 쪼아 피를 흘려 주린 새끼의 배를 채우게 한다고 한다. 그게 모성(母性)의 본질이다. 정두리(61)는 엄마의 부재를 통해 엄마의 존엄과 수고를 깨닫고 성장하는 소년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엄마가 아플 때〉를 읽은 뒤에 문득, '엄마, 미안해요'라고 말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