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그림♠음악♠낭송 시(詩)

[애송 동시 - 제 8 편] 과꽃/이효선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3. 31. 08:12
728x90
[애송 동시 - 제 8 편] 과꽃
어 효 선
과꽃 닮은 누나… 보고 싶은 우리 누나
신수정·문학평론가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꽃을 들여다 보면

꽃속에 누나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지 온 삼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1953)

▲ 일러스트 윤종태

이 시의 핵심은 첫머리에 나오는 '올해도'라는 구절이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다'는 것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또 그 전해에도 과꽃의 피고 짐이 한결같았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연의 순환과 생성의 법칙을 함축하고 있다. 꽃의 피고 짐은 변함없다. 때가 되면 꽃은 피고 진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꽃과 다르다. 이 시의 2연에 나오는 '누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올해도' 과꽃은 피는데 시집간 지 온 삼 년이 된 누나의 소식은 알 수 없다. 이 누나와 관련하여 확실한 것은 다만 그녀가 과꽃을 좋아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래서 누나는 과거형으로 추억될 수밖에 없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고' 그 꽃이 피면 꽃밭에서 '살았었다.' 이 시에 나오는 '좋아했지요'와 '살았죠'가 가슴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이 '소슬한 슬픔'은 우리 시의 기본 정조이기도 하다. 우리 시는 이런 누나들을 꽤 많이 알고 있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를 위시하여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가 노래하는 누나들은 주로 장미보다는 갈잎이나 국화, 과꽃 등과 같은 소박하고 평범한 심상들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생의 조락은 언제나 '누나'들의 몫이다. 그녀들이 "가을이면 더 생각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꽃밭에서〉 등 주옥같은 동시들을 많이 만들어낸 어효선은 1925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2004년 고인이 될 때까지 서울을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50년 전 서울을 회상하는 《내가 자란 서울》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동시대 다른 시인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자연을 노래하는 농경민적 상상력을 선보일 때 그는 여염집 화단에 앞다투어 피어나는 화초들을 기리거나 도시의 일상풍경을 산뜻하게 재연해내는 데 주력했다.

"뒷골목 한약국은/ 내가 어디 아프면,/ 할아버지가 데리고 가시는 집."(〈한약국 할아버지〉)이나 "창이랑 징이랑/ 좌악 벌여 놓고./학교 길에 앉았는/ 신기료 장수."(〈신기료 장수〉)라는 대목은 도시의 뒷골목을 뛰어다니는 소년들의 감수성이 아니라면 포착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어효선에 와서 우리 동시는 드디어 도시 소년들의 삶을 노래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과꽃〉의 소년 역시 낯설지 않다. 그는 오늘날 도시인들의 잃어버린 유년이자 과거다. 우리에겐 여전히 '꽃밭'이 필요하다.

 

 

......
♪ 동요 - '과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