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부부/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 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언젠가 길을 가다가 보니 끝이 뾰족한 이상한 열매가 보였습니다. 무슨 나무의
열매일까 가까이 가서 수피와 나무이파리를 한참이나 보고나서야 목련나무의
열매인 줄을 알았습니다. 나무도 제 각각 얼굴과 손이 다르고 옷도 다른데 그
저 꽃만 본 타성으로 꽃지고 나면 관심이 없어 몰라본 것이었지요.
그러고보니 은행나무꽃도 여지껏 본 적이 없습니다. 신갈나무나 오리나무처럼
산을 가지 않아도 가로수로 많이 사용되어 도심에서 매일 만나는 나무인데도
회화나무나 대추나무, 측백나무, 주목의 꽃처럼 작고 색깔이 두드러지지 않아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런지 기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을이면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발에 밟힌때 쯤 한 번 쳐다보는데 열매맺은 걸
로 보고 암나무인 줄 알지 형태만 보고서는 어느 나무가 숫나무인지 암나무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늘로 쭉 뻗은 것이 숫나무고 가지를 많이 벌린 것이 암나무라
고 하는 말은 들었으나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꽃이피는 식물은 자웅동체성이 대부분인데 오이나 호박, 오리나무, 소나무, 밤
나무는 한그루에 피는 꽃(한집꽃)이라고 합니다. 은행나무는 주목, 버드나무,
포플러, 소철, 뽕나무, 식나무,노간주나무처럼 자웅이주, 암수딴그루라고 하는데
사람처럼 남자, 여자가 따로 있는 나무는 바람이라는 중매장이가 없었다면 어
찌 이들이 해마다 두 섬 씩이나 되는 자식을 낳을수 있었을까요.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신부의 종아리에 닿기만 했는데도 저렇게 자식이 많이
열리니 만약 안기라도 하였다면 세상은 온통 은행나무 천지가 될뻔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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