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전전긍긍/안도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4. 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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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긍긍
                   
                          안도현



  소쩍새는 저녁이 되면
  제 울음소리를 산 아래 마을까지 내려보내준다
  방문을 닫아두어도 문틈으로 울음을 얇게, 얇게 저미어
서 들이밀어준다
  머리맡에 쌓아두니 간곡한 울음의 시집이 백 권이다

  고맙기는 한데 나는 그에게 보내줄 게 변변찮다
  내 근심 천 근은 너무 무거워 산속으로 옮길 수 없고
  내 가진 시간의 밧줄은 턱없이 짧아서 그에게 닿지 못할
것이다

  생각건대 그의 몸속에는
  고독을 펌프질하는 또다른 소쩍새 한 마리가 울고 있을
것 같고
  그리고 그 소쩍새의 몸속에 역시 또 한 마리의 다른 소쩍
새가 살고 있을 것도 같아서
 
  나는 가난한 시 한편을 붙들고 밤새 엎드려
  한 줄 썼다가 두 줄 지우고 두 줄 지웠다가 다시 한 줄
쓰고 지우고 전전긍긍할 도리밖에 없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2004년. 반경환 명시1,2>




무언가를 선물 받으면 선물을 해야 마땅한 것이 인간의 도리인데 어떤 때는 형편이 되지 않아
선물을 받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에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하는 구절이 있는데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고 해서 다 공것은 없지요.

소쩍새 울음을 선물로 받았으니 시인이 할 수 있는 건 뭐 시밖에 더 있겠어요. 그래서 시 한 수
지어서 얼른 바치고 싶은데, 그런데 그 시란 놈도 한 줄 썼다가 두 줄 지우게 하고 두 줄 지웠다
가 다시 한 줄 쓰고 지우게 하니 시인은 밤새 전전긍긍할 도리밖에 더 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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