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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지옥/유하
정신 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새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세상이 모든 저녁」. 민음사. 1999>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호박꽃 속에 들어간 벌을 가둬 본 적이 있는지요. 벌이 들어간 호박꽃을 뚝 따서 입구를 막아버리면 갇혀있는 벌의 우는 소리가 윙윙 손을 타고 마음으
로 걸어 들어옵니다. 사랑을 하다가 마음을 얻지도 못하고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할 때 호박꽃 속에 갇힌 벌이 그러할까요
지지난해 여름, 여름이 한창 막바지에 이르던 8월 중순쯤 경기도 양주쪽으로 나들이를 가서 들꽃 사진을 찍다가 호박꽃 속에 벌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
았습니다. 문득 어리시절에 호박꽃을 오므려서 벌을 고통속에 몰아넣고 빙빙돌렸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시절 나는 재미로 장난의 놀이로 한 것이엇지만 벌을 아프게 한 것이었지요.
꿀이 아무리 넘치고 넘쳐나도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꿀은 더 이상의 달콤함이 없는 의미상실의 꿀일 수밖에 없겠지요. <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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