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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백운봉 가족등산(2007년 02월 18일(구정 설날)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4. 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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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백운봉 가족등산 /산행일 : 2007년 02월 18일(구정 설날)

      그 꽃 /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같이 간 사람 - 아내, 큰딸, 작은 딸, 막내 아들 그리고 나. 소요시간 - 7시간 30분 - 산행코스 - 백운대매표소 --> 백운산장 --> 위문(백운봉암문) --> 백운봉 --> 다시 위문 --> 용암문 --> 대동문 --> 아카데미매표소 하산

      ♧ 삼각산 백운봉 가족등산 제 1부 / 정상을 향하여 ♧ 삼각산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산지 몇 십 년이 되었지만 우리 가족 전부 다 같이 삼각산을 오른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삼각산의 제일 높은 봉인 백운봉을 지척에 두고도 우리 가족 5명이 함께 올라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기껏 올라가 봤자 진달래 능선을 지나 대동문까지가 한계였지요. 아내와 막둥이만 같이 두세 번 올라보 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구정) 연휴에 맞춰 두 딸과 함께 우리 다섯식구 꼭 한 번 올라보고 싶어서 산행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처음부터 순조롭지를 않았습니다. 큰딸이 가기 싫다더니 산행 날 아침, 아프다며 자리에서 영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이럴 때 진득이 기다리지 못하면 모처럼 세운 산행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 도 경험과 연륜의 산물입니다. 강한 재촉을 하면 도리어 역효과가 날 수도 있구요. 긴 기다림 끝에 결국 정오가 넘어서 집을 나섰습니다.

▲ <앞서가는 둘째 딸>
▲ <뒤에 오는 아내와 큰딸>
▲ <막둥이는 벌써 더운지 땀을 훔치고>
      ♧ 도선사 주차장을 향해서 ♧ 우리동네에서 삼각산의 정상인 백운봉을 오르려면 도선사 주차장을 들머리로 하는 것이 직선 코스입니다. 큰딸이 산행에 초보인데다가 큰길서부터 걸어 올라가면 지칠 것 같아서 도선사 주차장까지 택시를 탔습니다. 저 역시 도선사 주차장까지 나 있는 포장길을 걷기 싫었지요. 그런데 자가용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 차가 막혀 주차장까지 올라가지를 못하고 가다 서다 를 반복 합니다. 조금씩조금씩 올라가는 차보다 걸어가는 것이 빠를 것 같아서 내려서 걸어 올라갑니다.

▲ <커플 잠바, 나와 둘째 딸>
▲ <큰딸과 둘째 딸 >
▲ <아내, 큰딸, 둘째딸, 막둥이>
      ♧ 자연 속에서 시 한편을 ♧ 도선사 주차장에서 돌계단을 오르면 삼각산 백운봉으로 직행하는 산행 들머리입니다. 양력 새해 1일부터 전국의 국립공원에 입장료가 없어졌지요. 입장료가 폐지되고 난 뒤 "자연 속에서 시 한편을 무료로 감상해보세요" 가 새로 생겼습니다. 배치되어있는 시집을 펼쳐보니 눈에 익은 시인들의 이름이 보입니다. 안도현, 천양희, 문태준. 정호승 등... 다 유명한 시인들이지요. 한 권 가지고 가서 보고 싶었지만 혼자 가는 것도 아니어서 들었다가 놓았습니다. 지금은 춥지만 녹음이 우거진 시원한 산그늘에 앉아 시 한편을 읽어보는 맛도 참 좋겠지요.
▲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 산행 첫머리 ♧ 둘째 딸과 막둥이 아들은 벌써 저만치 올라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 모녀가 처지더니 도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산행 첫머리인데 어디서 구했는지 두 모녀가 도사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있네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뒤쳐지더니 백운봉을 오를 때까지 내내 앞서서 올라가지를 못했죠. 그러나 내려올 때는 잽싸게 잘 내려오더군요. 큰딸이... 무리를 하지 않고 호흡을 조절하며 계속 오르다보면은 이렇게 천천히 가더라도 정상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조금 빠르고 늦음의 차이일 뿐, 산행에서 필요이상으로 서두르는 것은 금물입니다.

▲ <하루재를 올라오고 있는 아내>
▲ <올라오려니 목도 타지요 쉬면서 물 한 모금>
      ♧ 하루재에서 잠시 쉬며 목을 축이고 ♧ 하루재라는 이름은 옛날 미아리고개에서 걸어서 오면은 여기까지 하루가 걸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도선사주차장에서 이곳까지 한 500미터쯤 되는데 조금 가파른 곳이라 이곳에 도착하면 다들 잠시 쉬면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출발하지요. 또 하루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영봉인데 영봉에서 바라보면은 거대한 암릉인 인수봉이 바로 코앞에서 보입니다. 경치가 참 아름다운데 산 입구서부터 정상까지 산이 좋아 산을 찾았다가 영원히 산사람이 된 사람들의 비석이 곳곳에 많이 서 있습니다. 산사람이 된 사람들의 혼이 서려서인지 이곳에 오르면 숙연한 마음도 듭니다. 오늘은 목적지가 백운봉이라 영봉을 지나쳐 계속 직진을 합니다. 산행도 인생 길과 같아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지요. 여기서부터 인수산장까지는 내리막길입니다. 힘든 산행에서 평지나 내리막길을 만나면 논둑 길 걷다가 꿩알 주운 것처럼 괜히 횡재를 한 기분이죠.

▲ <인수산장에 있는 이정표에서 아들과 아내>
▲ <길도 미끄러운데 도사 지팡이는 그만 버리시지요>
      인수산장을 지나서 ♧ 인수산장에서부터 백운산장까지 아니 정상인 백운봉까지는 계속해서 가파른 산길이 이어집니다. 내리막길을 내려왔으니 이제 또 올라 가야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습니다. 빙판입니다. 도선사 주차장에서 백운산장까지의 등산로는 골짜기가 깊어 여름산행이면 시원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닙니다. 여기서도 큰딸은 또 티를 냅니다. 작은딸은 미끄러운 신발을 싣고 거기다가 엄마 힘든다고 배낭까지 받아서 매고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미 끄러워 못 간다며 엄살, 엄살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좀 미끄럽기는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져서 다칠 수도 있지요. 부랴부랴 배낭에 들어있는 아이젠을 꺼냅니다. 준비된 것이 두 개밖에 없어서 걸음이 더딘 큰딸과 아들만 착용을 하게 했습니다.

▲ <연신 쫑알대던 큰딸이 계단에 빙판을 만나자 조심조심>
▲ <엉덩이를 빼며 올라가는 아들모습이 우습네요>

▲ <한 발 한 발 오르면 못 오를리 없지요>
▲ <백운산장이 저기 보입니다>
      ♧ 빙판 길을 올라가며 ♧ 아이젠을 하고도 큰딸은 절절매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고 툭 하면 방안에서 컴퓨더 게임이나 하는 아들은 우 리가 클 때처럼 산을 뛰어 오르내리며 자라지 않아서인지 산길이 영 어설픕니다. 산길이 익숙지 않는데다 길까지 미끄러워 더 엉거주춤입니다. 얼음이 얼어있지 않다고 해도 백운산장 바로 밑에 등산로는 좀 가팔라서 쉬지 않고 올라가면 숨이 차 오 르는 길입니다. 평상시 같으면 언제 이 오르막 길이 끝나나 하며 목 한번 축이고 쉬어가고 싶은 곳인데 바 닥이 미끄러워 땅바닥만 보고 설설기며 오르다 보니 어느덧 백운산장이 보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린지도 모르고 애들이 다칠세라 조심조심 오르다보니 어느새 백운산장까지 다 올라왔습니 다. 길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하다보니 힘든지도 모르게 백운산장에 도착을 한 것이죠. 땅만 보고 오르느라 주변경치를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빙판길이 힘든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오히려 보탬이 된 것 같습니다.

▲ <휴식중에도 이쁜척>
▲ <아들은 먹느라 바쁘죠>
▲ <여기보세요 순간, 딸의 손이>
▲ <새똥 맞은 사람은 누구>
      ♧ 백운산장에 드디어 도착 ♧ 아, 드디어 백운산장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습니다. 지난밤에 아내가 산에 간다고 준비한 토스트와 컵라면을 꺼내서 물을 부어놓고 기다립니다. 저는 바로 앞에 앉아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데 여기서도 예의 새초롬한 폼을 재며 앉아있는 큰딸이 갑자기 소란을 떱니다. 아내는 물휴지와 수건을 달라고 하고. 알고 보니 집비들기인지 산비들기인지 비들기가 똥 세 개를 떨어뜨리고 갔는데 하필이면 그 중에 하나가 폼잡고 있는 큰딸의 머리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안 간다고 아빠의 속을 끓게 하고 올라오면서도 갖은 불평 불만을 늘어놓더니 샘통이지요.

▲ <잘도 올라오시더니 맛나게도 드시네 >
▲ <아들은 토스트에 컵라면까지>
▲ <커피 맛에 취해서 비몽사몽>
      ♧ 토스트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 혼자 산행을 할 때는 먹는 시간도 아까워 김밥 한 줄에 물만 달랑 들고 다니는데 오늘은 컵라면도 진수성찬 입니다. 남들이 먹는 것이 은근히 부러울 때도 있었거든요. 산에서 커피 드셔 보았나요. 평소에도 커피를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산에서 식사 후 마시는 커피 맛이 집에서 먹는 맛하고는 또 틀립니다. 커피를 마시는데 아들은 제 몫인 토스트를 뚝딱 해치우고는 라면 한 그릇도 다 비워가고 있습니다. 산행 중에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지만 자기 몸에 맞게 한 두 잔 하면은 추위도 가시고 좋지요. 여름이라 면 냉동한 시원한 맥주 맛도 일품이구요. 같이 간 일행이 있었다면 술을 준비하여 한잔씩 했을텐데 아쉽죠.

▲ <백운산장 마당의 이정표에서, 스타 큰딸>
▲ <오르다가 힘드는지 아빠, 아직 멀었냐고 묻네요>

▲ <우리 집에서 큰아들이라고 부르는 둘째 딸>
▲ <마마님들은 어디서든 무엇이 달라도 달라요>
      ♧ 위문(백운봉암문)을 향하여 ♧ 자, 먹고 마셨으니 다시 백운봉 정상을 향하여 출발합니다. 이미 둘째 딸은 배낭을 매고 앞서서 오르고 있고 큰딸이 이정표 앞에서 포즈를 취합니다. 백운봉까지는 500미터, 위문(백운봉암문)까지는 200미터입니다. 백운산장에서 위문(백운봉암문)까지는 200미터밖에 안되지만 평지의 200미터와 가파른 오르막길의 200미터 는 차이가 많이 나지요. 조금만 걸음을 빨리 해도 숨이 턱턱 찹니다. 그런데도 작은 딸은 잘도 올라갑니다. 앞에 오르는 작은딸을 불러 세워서 한 장 찍고 여전히 뒤에 쳐지는 두 분 마마님들에게도 사진을 선물합니다. 1부는 도선사 주차장 들머리에서 위문(백운봉암문)까지이고 2부는 위문(백운봉암문)에서 백운봉 정상까지입니다. 3부는 백운봉 정상, 그리고 4부는 하산길입니다. 1부 끝.

삼각산 백운봉 가족등산 제2부 / 정상을 향하여 /산행일 : 2007년 02월 18일(구정 설날)
▲ <위문(백운봉암문)에서 / 뒤쪽은 구파발주차장 내려가는 길 >
      ♧ 위문(백운봉암문)에 도착 ♧ 위문(백운봉암문) 앞에 서니 햇살이 가득 쏟아집니다. 여기만 올라오면 거의 정상인 백운봉에 다 온 것 같은데 아직도 300미터를 더 올라가야 정상입니다. 잠시 숨을 골랐으니 다시 올라가야지요. 힘들다고 투덜대며 올라가는 큰딸이 묻습니다. 이따가 다시 이 길로 되돌아 내려오느냐고. 다시 내려오면 안 올라갈 속셈이지요. 막내아들이 물으면 다시 내려온다고 하고 큰딸이 물으면 안 내려오고 저 봉을 넘어서 간다고 했지요. 그러 면서 막 웃었더니 '거짓말이지' 하고 되묻습니다. 저도, 알면서 속아 주는 척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죠.

▲ <휴, 힘들다>
▲ <미끄러질라 중심을 잡고>
▲ <힘드시죠, 마마님>
      ♧ 나무 계단이 끝나고 바위 길로 ♧ 이 길로 다시 내려오면 안 올라가고 여기서 기다린다고 하던 큰딸이 '아, 힘들어 힘들어' 하면서도 꾸역꾸 역 올라갑니다. 산은 역시 이 맛에 올라가는 것이죠. 올라갈수록 건너편의 산들이 허리춤에서 점점 발 아래로 낮아집니다.

▲ <대포알 같이 우람한 인수봉>
▲ <여성스러운 노적봉>
▲ <백조바위 뒤 만경봉>
      ♧ 인수봉, 노적봉, 백조바위와 만경봉 ♧ 인수봉은 정상에서 봐도 멋있지만 올라가면서 옆에서 보면은 대포알 같이 것이 마치 남성의 이미지를 상징하 는 것 같기도 하고 땅거죽을 뚫고 불쑥 솟아오른 우람한 돌기둥을 보는 듯 합니다. 노적봉은 노적가리 전설이 있는 있다지요. 곡식더미를 노적가리라고 부르는데 만경봉의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노적봉은 그 형상이 마치 노적가리와 같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백조바위 뒤로 잔설이 성성한 만경봉이 보입니다. 천도자리를 알아보라는 이성계 명을 받고 무학대사가 이곳 에 올라서 한양이 천도자리로서 적합한지를 살폈다고 하지요. 만경봉에 오르면 만가지 경치를 구경할 수 있어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데 이곳은 아직 등산로가 없습니다. 삼각산(북한산)의 염초봉과 만경봉의 리찌구간에서 사고가 제일 많이 난다지요. 그런데도 리찌매니아들은 잘 도 올라갑니다. 백운봉암문으로쪽으로 오른 다음 용암문쪽으로 내려오더군요. 저 백조바위를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은 오리를 더 닮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일부로 저렇게 빚은 것도 아닌데 어찌 저다지도 짐승의 형상을 빼 닮았는지요. 자연의 조각품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기합니다.
▲ <모자바위? 아래서>

▲ <만경봉을 배경으로>
▲ <같이 찍으라고 했더니 힘들어 죽겠다는 큰딸(오른쪽)>
      ♧ 가는 중간 중간 쉬면서 ♧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오르다가 힘들면 쉬면서 사진을 찍지요. 쉬다가 또 사진을 찍구요. 찍으면서 쉬고, 쉬면서 찍고. 생각은 때가 되면 가물가물해 지는 법. 결국은 나중에 사진밖에 남는 것이 또 있겠어요. 빨리 가나 천천히 가나 해는 넘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그렇게 쉬며 쉬며 오르면 되는 것이지요.

▲ <아들은 엄마를 좋아해>
▲ <바위에 붙어서>
▲ <위에 모자바위?가 아슬아슬>

▲ <이렇게도 찍고>
▲ <저렇게도 찍고>
      ♧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 지금은 산아제한이 풀렸을 뿐 아니라 어느 지자제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현금을 준다지요. 그것도 백만 원씩이나.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우리 아들이 태어날 때만해도 한 집안에 아이가 셋이 되면은 이웃의 눈총이 좀 있었지요. 의료보험도 지원 이 되지 않아 장기간 입원하고 수술하는 바람에 수백 만원의 돈이 들어갔지요. 어찌 국가장래의 주체인 인구정책을 십 년 앞도 못보고 미시적이고 근시안적인 정책을 펴는지요. 다시 출산장려정책을 펴느라 호들갑을 떠는 정책입안자들을 보면은 화도 나고 입맛도 씁쓰레해집니다. 딸들은 아빠를 좋아하고 아들들은 엄마를 좋아하나요. 아들이 저 혼자 오르다가도 한 번씩 엄마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면서 애교를 부립니다. 엄마, 힘들지 않느냐고.

▲ <백조바위에 앉아서>
▲ <만경봉을 배경으로>

▲ <무섭다고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 <눈을 감고 말았네요>

▲ <힘들다고 사진도 안 찍는다더니>
▲ <샐쭉하니 앉았네요>

▲ <카메라만 갖다대면 브이 자를 그리더니>
▲ <어울리지 않게 괜시리 수줍은 척>

▲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요리조리 빼더니>
▲ <오늘은 이쁘게도 하라는대로 잘도 하네요>
      ♧ 사진을 찍다보니 춥네요 ♧ 더운 봄날이나 여름 같으면 바람이 불어주면 좋겠죠. 시원할테니까요. 사진을 찍으며 지체하다보니 땀이 식어서 춥다며 그만 찍고 빨리 올라가자고 하는데도 식구들 독사진을 다 찍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해서 이쁩니다. 다른 날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도 사진 찍는 거 안 좋아 한다며 도망을 가더니 오늘은 웃으라고 하니 웃기까지 합니다.
▲ <백조바위에 앉아서 만경봉을 배경으로 우리부부도 한 컷>

▲ <실물보다 잘 나왔죠>
▲ <웬일로 큰딸이 같이 찍자며>
▲ <우리 집은 여자가 셋 >
      ♧ 남는 것은 사진 뿐 ♧ 엄마 아빠도 찍으라고 해서 우리 부부도 만경봉을 배경으로 해서 찍었지요. 그런데 실물보다 더 잘 나와서 실물 보여주기가 쑥쓰럽네요. 큰딸과도 찍고 세 모녀도 찍고 막 찍었지요. 다시 말하지만 지들 다 떠나고 나면 남는 것이 사진밖에 더 있겠어요. 그 사진조차도 한참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 <백운봉을 오르는 어느 친절한 등산객이 찍어주었습니다>

▲ <여기만 돌아가면 너럭바위가 나옵니다>
▲ <우이봉을 배경으로>

▲ <햇볓이 너무뜨거워>
▲ <딸의 멋진 브이>
▲ <인수봉이 아들키보다 작아 보이네>
      쇠줄을 잡고. 인수봉을 배경으로 ♧ 뒤에 사람이 올라오는데 비켜주지도 않고 사진을 찍고 있으면 미안하지요. 세 모녀를 찍고 있으니까 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던 잘 생긴 등산객 남자 한 분이 성큼성큼 옆으로 먼저 오르더니 가족이 같이 찍으라며 한 장 찍어 주었지요. 그런데 아들이 먼저 올라가버려 아쉬웠네요. 이제 쇠줄을 잡고 있는 서 있는 저 모롱이만 돌아가면 백운봉이 보입니다. 백운봉 정상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도 보이겠죠. 오르면서 인수봉을 배경으로 또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실은 저런 곳에서 저렇게 한가하게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답니다.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외길인데다가 내려오고 올라가는 사람들 틈에 밀리어 평소에는 사진을 찍을 엄두 고 못 내고 밀려 올라갔다가 밀려 내려오는 곳이지요. 기회가 되면 놓치지 말아야지요. 안 그러면 후회합니다. 막연하게 무얼 후회하냐구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십시오. 내가 걸어온 길이 다 잘 난 것만은 아니겠지요. 2부 끝.

삼각산 백운봉 가족등산 제3부 / 백운봉 정상에서 /산행일 : 2007년 02월 18일(구정 설날)
▲ <삼각산 3·1 운동 암간 안내문>
      ♧ 백운봉 정상에 이르면 ♧ 백운봉 정상에 다다르면 왼쪽에 정상의 태극기가 보이는데 정상에 오르기 전에 인수봉이 가장 가까이 보이 는 오른쪽 끝에 3·1 운동 암각문에 대한 안내문이 서 있습니다. 이 3·1 운동 암각문은 백운봉 정상에 새겨져 있는데 독립운동가인 정재용선생이 3·1 운동의 역사적 사실 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새겼다고 합니다. 1919년 3월1일 오후 2시 33인 대표 중 29인이 태화관에 모여 33인 대표 손병희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 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습니다. 1919년 3·1 이날 같은 시각 파고다 공원에는 각급 학교 학생 시민 약 5,000명이 모여 있었는데 33인의 민 족대표가 예정을 바꾸어 나오지 않자 정재용선생은 배포하고 남아 있는 한 장을 가슴속에서 꺼내어 단상에 올라가 낭독하였다고 합니다. 낭독이 끝나자 군중 속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한독립만세“가 시작되고 자주독립을 외치는 거대한 함성의 물결은 메아리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 <백운봉 정상에 휘날리는 태극기>
▲ <암각문 출입금지 표시판>
      ♧ 백운대 정상 바위에 새겨진 '3.1독립선언' ♧ 매사는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바라는 바가 있으면 바라지 않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일제의 쇠말뚝으 로 정수리에 '독침'을 꽂고 있던 북한산은 역시 정수리 언저리에 한 독립운동가가 3.1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새겨 놓은 '민족정기'의 상징물을 이고 있다. 백운대 정상 바위 위에는 독립운동가 정재용(鄭在鎔, 1886~1976,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선생이 새긴 3.1독립운동 관련 기록이 아스라히 남아 있다. 모진 비바람에다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닳고닳아 이젠 글씨를 판독하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다. 가로 1.2m, 세로 3m 크기에 전체 총69자, 해서체로 씌어진 이 내용은 정 선생이 일제의 눈을 피해 몰래 새 긴 것인데 바위바닥 네 귀퉁이에 '경천애인(敬天愛人)' 네 자를 새겨 각을 잡은 다음, 그 안에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월 10일 육당 최남선이 썼고,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정재용이 독립선언만세를 이끌었다(번역문)' 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 <정상을 코앞에 두고 >
▲ <잠시 숨을 고릅니다>

▲ <잠시 쉬던 가족들이>
▲ <한 명씩 한 명씩>
▲ <최정상을 향하여>
▲ <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몇 발자국만 오르면 ♧ 백운봉 정상에 서서 오르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어떤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최정상에 오르고 싶어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까지 단숨에 오릅니다. 그러나 대부분 정상 바로 직전에 털썩 주저앉아서 잠시 쉬며 숨을 고릅니다. 우리 가족들도 제가 암각 안내문 사진을 찍는 동안 앞서고 있어서 곧바로 끝까지 올라 가나보다 했더니 그야말로 정상을 몇 미터 앞에 두고 쉬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쉬고 있는 동안 먼저 정상에 올라서 기다리고 있다가 올라오는 가족들을 인수봉을 배경으로 차례대 로 찍었습니다.

▲ <원효봉과 염초봉>
▲ <신랑·신부 바위>
▲ <백운봉 주변 바위>

▲ <백운봉에서 바라본 노적봉>
▲ <인수봉에서 암벽 타는 사람들>

▲ <인수봉 꼬리 부분>
▲ <인수봉 허리 부분>
▲ <인수봉 머리 부분>
      ♧ 백운봉 정상에서 ♧ 오를 때 그 높아 보이던 인수봉도 백운봉 정상에서 보면은 발 아래에 보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백운봉은 836.5 미터, 인수봉은 810 미터로 26미터나 낮으니까 아래로 보이는 것이지요.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암벽을 타는 클래이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05년 5월 1일날 올랐을 때 찍었 던 사진을 같이 올립니다. 인수봉 암벽에 매달린 사람들의 광경이 장관이었거든요. 이제 곧 봄이 되어 날이 풀리면 또다시 저 인수봉 암벽에 수많은 사람들이 붙어 있겠죠. 오를 때에 옆에서 보면 큰 돌기둥 같아서 아무리 뽑으려고 해도 뽑힐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인수봉의 그 우 람한 형상은 어디로 가고 백운봉에 서면 뒷부분이 마치 꼬리 달린 뱀처럼 뒤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참고로 만경봉은 795.5m로 국망봉이라고도 하는데 국망봉은 무학대사가 한양의 도읍지를 살폈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 오르면 세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으므로 만경대라 불렀다고 합니다 리찌를 즐기는 사람들은 많은 오르고 있지만 이 만경봉은 정상적인 등산로가 개설되어있지 않아서 일반등산 인들이 오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연훼손일지는 모르나 이 만경봉에도 등산로가 개설이 되어서 나 같은 만 년 산행초보자도 구경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해보면서>

▲ <정상에 서 있으면서>
▲ <다시 안 올라온다는 큰딸>

▲ <올라오느라 힘들었을텐데>
▲ <여전히 힘이 나는 작은 딸>

▲ <그래도 옆에서 우스개소리를 꺼내자>
▲ <어색한 웃음을 터뜨립니다>
      ♧ 태극기 휘날리는 백운봉 정상에서 ♧ 드디어 백운봉 정상입니다. 삼각산(북한산)은 지형적으로는 서울시 강북구, 도봉구, 은평구, 종로구, 성북구, 경기도 의정부시, 고양시, 양 주군 등에 걸쳐 발달해 있으며 198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답니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이지요. 사방을 빙 둘러보면은 제가 사는 우이동쪽을 기점으로 왼쪽 동쪽방면에 경 기도 의정부, 송추가 양주가 보이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아래 구파발쪽 산성매표소 자리에 있는 주차 장도 보입니다. 정상에 십여 분 이상 머물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그러나 백운봉 최정상은 이렇게 편안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서보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더 많 은 사람들이 올라와서 돌아서기도 힘든 장소입니다. 정상에 오래 머물 수도 없고 사진 한장 제대로 찍기도 쉽지 않는데 오늘은 설 명절이어서 등산객들이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산은 오르느라 힘이 들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요.

▲ <여기가 바로>
▲ <백운봉 중앙에>
▲ <바위 위입니다>
▲ <정말 최고 높은 곳이죠>

▲ <눈을 감아도>
▲ <눈을 떠도>
▲ <다 보이나요, 세상이>

▲ <꿈과 이상은 높게 >
▲ < 저높고 푸른 하늘처럼>
      ♧ 정상 위의 정상 ♧ 백운봉 정상에 오르면 정재용선생이 새겼다는 암각문이 있고 누가 들어서 갖다 놓은 것처럼 중앙에 1미터 내 외 크기의 바위가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두 사람이 올라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지요. 밤사이 백운봉이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봐 지키고 있는 한밤의 정찰병처럼 오두마니 중앙에 서서 최정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엄격히 따져서 말하자면 바로 이 조그만 바위가 백운봉의 최고 꼭대기이지요. 사람이 많은 날에는 이 바위를 기대고 사람들이 빙 둘러 서 있어서 바위에 오르려고 비켜달라고 말하기도 미 안 할 정도지요. 이 날도 정상에는 사람들이 좀 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최고 높은 곳에 올라서 사진을 찍었지요. 언제 우리 가족 전부가 백운봉에 다시 올라보겠어요.
▲ <내려가면서 인수봉을 배경으로>

▲ <가족이란 이름으로>
▲ <같이 있을 때가>
▲ <행복 아니겠는지요>
      ♧ 가족사진-나태주 ♧ 아들이 군대에 가고/대학생이 된 딸아이마저/서울로 가게 되어/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자고 했다.// 아는 사진관을 찾아가서/두 아이는 앉히고 아내도/그 옆자리에 앉히고 나는 뒤에 서서/가족사진이란 걸 찍었다.// 미장원에 다녀오고 무쓰도 발라보고/웃는 표정을 짓는다고 지어보았지만/그만 찡그린 얼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떫은 땡감을 씹은 듯/껄쩍지근한 아내의 얼굴/가면을 뒤집어쓴 듯한 나의 얼굴/그것은 결혼 25년만에/우리 가 만든 첫 번째 세상이었다. 나태주님의 시 [가족사진] 전문입니다. 우리도 벌써 큰딸은 집을 떠나 있고 아들은 중학생이지만 머지 않아 군에 간다는 말이 나오겠지요.

▲ <이 사진은 05년 5월 1일>
▲ <백운봉 정상에서>
▲ <너럭바위을 찍은 사진입니다>

▲ <오늘은>
▲ <2007년 02월 18일>
▲ <음력 설납입니다>
▲ <고향대신 찾아갔지요>

▲ <만경봉은 서쪽이라>
▲ <눈이 쌓여 있는데>
▲ <인수봉은 해가 떠 있습니다 >
      ♧ 너럭바위에서 ♧ 위의 세 장의 너럭바위 사진 세 장은 05년 5월 1일 혼자서 백운봉에 올랐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백운봉을 오르내리며 이곳에서 다리를 뻗고 쉬기도 하고 밥도 먹고 사진도 찍습니다. 사진에 도 수십 명이 넘는 걸로 봐서 한 백 명쯤은 한꺼번에 앉아서 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춥다면서 웅크리고 있는 큰딸, 불쌍하게 보입니다>

▲ <여자는>
▲ <남자하기>
▲ <나름이지요>
      ♧ 너럭바위에서 ♧ 백운봉에 내려오자마자 내려가기 바쁜 가족들을 너럭바위로 불러모았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너럭바위에서 사 진을 찍지 않고 내려가면 섭하지요. 백운봉을 중앙으로 하여 왼쪽은 인수봉이고 오른쪽은 만경봉입니다.
▲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 <앉아 있으니까 엉덩이가 차갑습니다>
▲ <내려가야 하는데 하품도 나오고>
      ♧ 너럭바위에서 3 ♧ 여름 산행은 햇볕이 따갑지만 시원하니까 능선을 타고 경치를 즐기는 것이 좋고 겨울산행은 바람을 막아주니 까 골짜기를 타고 오를 때가 좋지요. 정상에 탁 트인 곳에 와 있으면 땀이 식으면서 추워집니다. 이 날도 사 진을 찍느라 20여분 머물렀더니 아이들이, 특히 큰딸이 춥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내려가는 시간을 재지 않고 너무 늑장을 부렸나요. 충전기도 좀 아껴 두어야하는데 정상에서 너무 많 은 사진을 찍는 바람에 하산하면서는 사진도 못 찍고 결국에는 캄캄한 산길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 <태극기 아래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은, 아내 >
▲ <백운봉 바로 아래 너럭바위에서>
      ♧ 산을 오르며 /도종환 ♧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님의 [산을 오르며] 전문입니다. 우리는 산을 보통 일상적인 생활이나 삶에 비유를 많이 합니다. 산을 오르는 일, 산을 내려오는 일과 평지 와 봉우리가 있고 항상 정상에 머물려 있을 수가 없으며 겸허한 마음으로 산을 타지 않고 자만으로 욕심으 로 타다보면 자칫 사고로 이어져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으며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잃을 수 도 있습니다. 도종환님의 [산을 오르며] 시 한 편으로 삶의 겸허함을 배우며 겸손한 마음으로 산행을 하여야겠습니다. 3부 끝.

삼각산 백운봉 가족등산 제4부 / 아래를 향하여(하산 길) /산행일 : 2007년 02월 18일(구정 설날)
▲ <내려가는데는 잽싸다고 했더니 모두를 웃습니다>

▲ <언제 보아도 아들 같이 듬직한 둘째 딸은>
▲ <올라올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맨 나중입니다>
▲ <올라올 때는 힘이 들었지만 내려갈 때는 즐겁습니다>

▲ <모두들 룰룰 랄랄>
▲ <콧노래를 부르며>
▲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 하산 길은 즐거워 ♧ 백운봉에서 내려오자마자 내려가는 가족들을 불러모아 너럭바위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편안히 경치를 구경하 기에는 바람이 좀 차가웠습니다. 정상에서 머무른 시간이 30분 정도 되었을까요. 혼자 다니면 시계를 보며 머무른 시간과 구간을 지난 시간을 재어 보는데 가족들과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 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하산을 해야합니다. 그만 내려가자고 말이 떨어지자 올라올 때 항상 제일 꼴찌로 올라오던 아내가 제일 앞장을 서고 춥다면서 계속 그만 내려가자고 재촉을 하던 큰딸이 잽싸게 일어나서 뒤따릅니다. 그러자 혼자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들도 엄마를 부르며 부리나케 따라갑니다.
▲ <연신 웃고 떠들며 내려가느라 정신이 없는데>

▲ <사진을 찍느라 자꾸 지체하는 나에게>
▲ <둘째딸이 아빠도 빨리 내려오시라고 합니다>
▲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 보아도 이곳의 경치는 참 아름답습니다>

▲ <지금 이 길은 외길에다 바위 길인데>
▲ <봄이나, 일요일 날씨가 좋으면>
▲ <백운봉 올랐다 내려오는>

▲ <사람들로 항상 넘쳐서>
▲ <위문(백운봉암문)까지는>
▲ <몇 번을 기다렸다 가야합니다>
▲ <위문(백운봉암문) 바로 아래(용암문쪽) 나무 계단입니다>

▲ <위문(백운봉암문)이 보이니까>
▲ <마치 다 온 것처럼 싱글벙글입니다>
      다시 위문(백운봉암문)에 서서 ♧ 삼각산의 제일 높은 봉, 백운봉(836m)에 올라본 가 보셨나요. 진달래 능선쪽에서 백운봉을 오르려면 반드시 위문이라는 곳을 머리에 두고 통과를 해야 하는데 위문의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 또는 '백운문'이라고 합니다. 백운봉암문은 삼각산 정상인 백운봉에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백운문이 제 이름을 빼앗기고 위문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제 점령기부터라고 하는데 독도 문제만 나오면 분개를 하면서 펄펄 끓는 여론이 민족적 정기를 훼손하는 이런 일에는 왜 무관심하는 태도로 일관 하 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산성에는 5대문과 7암문, 수문이 있는데 모두 14성문이 있다고 합니다. 위문은 역할은 보급로나 비밀통로로 이용되던 암문으로 전략적으로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만든 문이었 기에 문루(門樓)도 없고 규모도 작지만 산성의 방어 구조물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삼각산의 제 일 높은 곳에 있는 문 [백운봉암문]은 위문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백운봉에 박혀 있던 24개의 철심은 다 빼내었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보나 우리 민족의 정서로 보나 전통 적으로도 맞는 이름 삼각산도 바로 잡고 위문도 모든 사람들에게 백운봉암문으로 불리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삼각산(북한산)은 지형적으로는 서울시 강북구, 도봉구, 은평구, 종로구, 성북구, 경기도 의정부시, 고양시, 양주군 등에 걸쳐 있으며 들어가고 나오는 곳(나들목)만 해도 98군데나 된다고 합니다. 행정구역이 넓다보 니까 들머리(등산로)도 참 많은데 언제 이 많은 곳을 한 번씩 다 가보지요......

▲ <위문(백운봉암문)에서 용암문 내려가는 길>
▲ <노적거리 전설의 노적봉>
      ♧ 산행을 마치며 ♧ 아직도 내려가야 할 길이 먼데 위문(백운봉암문)에 내려오니까 마치 거의 다 내려 온 것처럼 좋아들 합니다. 위문(백운동암문)에서 용암문, 북한산장, 대동문을 거쳐서 집까지 내려가려면 위문(백운동암문)에서 대동문 까지 2.4킬로, 대동문에서 제일 지름길인 아카데미하우스로 하산을 해도 1.9킬로여서 아직도 4킬로가 넘게 남아 있습니다. 디카의 충전지가 다 떨어져 사진을 더 못 찍은 것이 아쉽고 또 시간계산을 잘못하여 대동문에 도착했을 때는 6시가 넘어서 이미 캄캄해져 있었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더듬더듬 거리며 무사히 잘 내려오기는 했지만 시간을 잘못 맞춘 죄?로 가족들로부터 투덜대 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요. 특히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이 내리막길을 잘 못 내려오는데 밤길이라 내 손을 잡고 곽 잡고 안 놔주 는 바람에 더 힘들게 내려왔습니다. 차 타는 곳에 도착을 해서 버스운전대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니까 7시 25분, 7킬로 가까운 산행에 7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집 가까이 다가오자 피곤하고 힘든데 아내가 시장으로 가자고 합니다. 힘든데 그냥 가자고 했더니 큰딸아이 가 산행 내내 LA갈비, LA갈비 노래를 했다며 해서 먹여야된다고 합니다. 우리 큰딸에게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안 먹여주면 꼭 병이 납니다. 어려서부터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했기에 아프면 병원비와 약값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사주는 것이 돈도 덜 들어가고 몸도 안 상하기 때문입니다. 큰애가 이 LA갈비 애기를 갑자기 꺼낸 것이 아니고 며칠 전부터 꺼냈다고 합니다. 애들 어릴 때 동영상을 찍어놓은 것이 있는데 명절 전에 시간이 있어 이 테이프롤 보는데 생일상 차리는 것이 찍힌 테이프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생일이 보름 사이에 셋이 다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케이크를 생략하기도 하는데 그 테이프를 유심히 본 둘째가 아들 상에는 LA갈비가 놓여있는데 자기 들(딸 둘)상에는 케이크만 달랑 있다면서 그 때부터 아들 딸을 차별했냐고 애교 섞인 항의를 했는데 그걸 보고 큰딸이 LA갈비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려오는 산길이 캄캄한데도 한쪽 길에 앉아서 남은 음식(토스트)를 다 먹고 내려 왔는데도 LA갈비를 해 놓으니까 다들 맛있게 잘도 먹네요. 처음 한 산행 치고 거하게 한 번 잘 다녀왔지요. 끝. 그 꽃 /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인생 길, 애를 쓰고 오를 때 못 본 것이 참 많습니다 .산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려운데 이름 없는 보잘 것 없는 한송이 꽃이라도 눈여겨보며 의미도 새겨보면서 천천히 잘 내려와야겠지요. 오르막 내리막 있는 인생 길이 산을 오르다 내려오는 거와 무엇이 다르겠는지요. 1.2.3.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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