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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유치환 - 우울한 샹송/이수익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4. 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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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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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愛)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지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이수익 시선집『불과 얼음의 콘서트』(다남,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