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각축 / 문인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4. 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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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축 / 문인수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 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2』(국립공원, 2007)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다. 개발되는 숲에 알을 낳은 어미거위가 소음의공포에 알을 버리고 떠나고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에이미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거위 알을 가져와 인공부화를 시킨다. 알에서 깬 거위새끼들은 에이미를 어미인 줄 알고 따라다닌다. 각인의 시작이다.

 

야생거위의 새끼들은 부화하고 나오는 순간 제일 먼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을 엄마로 생각하고 줄곧 따라다닌다. 야생거위새끼들은 이렇게 처음 만나는 것이 사람이라도 졸졸 따라다니는데 콘라트 로렌츠가 쓴 「솔로몬 왕의 반지」에 보면은 야생(청둥)오리는 도망을 간다고 한다.

 

콘라트 로렌츠는 노벨의학, 생리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이며 비교 행태학의 창시자이며, 세계 제1의 동물 심리학자, 동물 행태학자이다. 그는 야생거위의 새끼들은 사람을 어미로 알고 따라다니는데 야생오리는 정반대로 왜 사람을 피하고 무서워하는지 알아내려고 실험을 하였다.

 

청둥오리와 모습이 비슷한 터어키 오리를 유모로 삼아 알을 품게 하여 부화를 시켰더니 부화한 새끼들은 몸의 물기가 마르자 곧장 유모에게서 도망쳐 달아나서 어미를 찾아 울고불고 야단이 났다. 그런데 겉모습에서 청둥오리와 차이가 많은 흰 집오리를 유모로 하여 부화를 시켰더니 야생오리새끼들은 진짜 엄마로 알고 잘 따라 다니는 것이었다. 외모는 닮지 않았지만 흰 집오리의 소리가 야생오리 어미의 소리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그는 쪼그려 앉아서 기어가며 오리소리를 흉내내 보았더니 야생오리새끼들이 그의 주위로 막 몰려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어미를 찾아 애처롭게 울고 또 소리를 내면 조용해지는 것을 보고 야생거위새끼가 시각으로 각인을 하는 반면 청둥오리새끼들은 청각으로 각인을 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어릴 때 형제끼리 툭탁 툭탁 자주 싸웠다. 말다툼이 아니라 주먹질이었다. 싸울 때마다 어머니한테 형제간에 의초롭지 못하다고 혼나곤 했는데 그때 우리가 싸운 것은 저 새끼염소들처럼 훗날에 형제들 간에 정이 더 도타워지라고 시각, 청각, 촉각을 동원한 공감각으로 각인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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