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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 환상곡/이상범
―달팽이 선생에게
어쩌면 마지막 지휘일지 모르겠다
노구에 연미복 끌며 천천히 등장하는
먼 달빛 조명 받으며 무대중앙 서 있다.
달팽이의 여린 뿔에 휘감기는 우주의 소리
숨막히는 고요 속에 비밀의 문 열어놓고
음색도 꺼풀 벗고서 별빛 불러 앉힌다.
숲의 바람이 일고 물면이 들먹인다
이파리와 이파리 사이 밤의 향기 돌며 가고
저 멀리 강물을 뉘인 곳 풀숲들이 웅성댄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가 잡은 지휘봉에 춤추는 우포 환상곡
갈채 속 연미복 끌며 점 하나로 사라진다.
(『신전의 가을』. 동화사. 2002)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4편 수록 중 1편. 2009)
2010-04-28 / 오후 22시 5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