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매에 스며있는 '눈물'
공부를 않고
놀기만 한다고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다.
잠을 자려는데
아버지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으니
아버지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미워서
말도 안 할려고 했는데
맘이 자꾸만 흔들렸다.
(1995)
- ▲ 일러스트 윤종태
아이를 때리는 일보다 더 마음 아픈 일이 또 있을까. 아이에게 매를 대는 순간 후회는 이미 부모의 몫이다. 이 시의 아버지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고 매를 댔다. 매 맞은 아이는 아마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을 것이다.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훔쳐내다가 눈가를 벌겋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아이는 잠을 청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얼굴을 한 채 한 아이가 잠을 청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다!
임길택(1952~1997) 시인은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가만히 눈물을 닦아준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끼며 '미워서 말도 안 하'려던 마음이 흔들린다. 매를 맞은 기억은 어느새 저만치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다시 한 상에 앉아 아침을 먹을 것이다. 지난밤의 악몽은 누구에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시의 감동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 어떤 것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무화시킬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영원하다. 이것은 네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양간에 딸린 아랫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 수밖에 없었던 임길택 시인의 자전적 경험에서 우러난 진실 같기도 하다. "유리창이 바람 막아 주는 교실에서/ 선생님 풍금 소리 따라/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도/ 그 부는 바람 온몸에 맞으며/ 쉼 없이 거름 져내고/ 백 원짜리 담배조차/ 껐다가 다시 태우는 우리 아버지"(〈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에 다름 아니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도전 초등학교 군대 분교, 경남 거창군 신원면 중유 초등학교 등 탄광과 산골에서 교사생활을 했던 경험을 《탄광마을 아이들》(1990)과 《할아버지 요강》(1995) 등의 시집을 통해 진솔하고 리얼하게 펼쳐 보였던 임길택 시인은 1997년 폐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향년 45세.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떠나가는 곳 미처 물을 틈도 없이/ 지나가는 자리마저 지워버리고 가는 새/ 금 그을 줄 모르고 사는/ 그 새"(〈똥 누고 가는 새〉) 마당에 똥을 싸며 지나가는 새를 보고 그 새의 무위의 삶을 기리던 그는 바로 그 새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김용택 시인은 그의 죽음을 두고 "어찌 그리 일찍 가부렀냐. (중략) 네 책을 읽으며 서럽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 그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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