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낙화-조지훈/이형기/박시교/이원규/정호승/도종환/이영도/유치환/김정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6. 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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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런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시선집 『한국의 명시』김희보 엮음 <증보판. 종로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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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2

       조지훈

 

 

피었다 몰래 지는
고운 마음을


흰무리 쓴 촛불이
홀로 아노니


꽃 지는 소리
하도 가늘어


귀기울여 듣기에도
조심스러라


두견(杜鵑)이도 한목청
울고 지친 밤


나 혼자만 잠들기
못내 설워라

 


-(『청록집』.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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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적막강산』. 모음출판사. 1963)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4편 수록 중 1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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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1/박시교

 


꽃잎 분분히 지던 지난 봄 그 어느 날


마침내 아이엠에프 실직의 그 긴 대열에 끼이고야만 나를 애써 위로한다며 불러낸 거래처 공장장, 눈물 글썽이며 내 두 손을 꼭 잡는 그 정이 너무도 따뜻했다. '우리 공장도 지난 달로 거덜났어요―' 나보다도 그가 실직할 것을 더 걱정하며 거푸거푸 잔을 비운다. 취하라고, 취하자고.


답답한 마음 비켜서―'보옴나알은 가안다'


누가 적막강산을 함부로 노래하는가


저마다 가슴에 묻은 깊이 모를 아픔 있어


꽃은 또 파르르 파르르 저렇듯 지누나

 

 

-시집 (독작(獨酌)도서출판 작가. 2004)
2010-07-19 / 오전 1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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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이원규

 


별똥별,


저 우주적인 돌팔매질이


나의 왼쪽 눈썹을 스치는 순간

 

그 여자 사뿐,


지구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시집『강물도 목이 마르다』. 실천문학사. 2008
2010-05-06 / 오전 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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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도종환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꽃이 돌아갈 때도 못 깨닫고
꽃이 돌아올 때도 못 깨닫고
본지풍광 그 얼굴 더듬어도 못 보고
속절없이 비 오고 바람 부는
무명의 한 세월
사람의 마을에 비가 온다

 

 

-시선집『다시 피는 꽃』(현대문학북스 2001)
2010-12-15 / 오전 09시 43분 /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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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이영도
 -눈 내리는 군 묘지에서

 

사모침은 돌로 섰네
겨레와 더불어 푸르를
이 증언의 언덕 위에
감감히
하늘을 덮어 쌓이는
꽃잎, 꽃잎

 


2011-01-22 / 토요일, 오전 0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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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치환

 

 

뉘가 눈이 소리없이 내린다더뇨


이렇게 쟁쟁쟁
무수한 종소리 울림하며 내리는 낙화


이 길이었나
손 하나 마주잡지 못한 채
어쩌지 못한 젊음의 안타까운 입김 같은
퍼어펄 내리는 하얀 속을
오직 말없이 나란히 걷기만 걷기만 하던
아아 진홍 장미였던가


그리고 너는 가고
무수한 종소리 울림하는 육체 없는 낙화 속을
나남 남아 가노니


뉘가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더뇨,

 

 

-제4시집『청령일기 (행문사, 1949)
2011-01-22 / 토요일 오전 1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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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치환
 


돌돌돌 가랑잎을 밀치고
어느덧 실개울이 흐르기 시작한 뒷골짝에
멧비둘기 종일을 구구구 울고
동백꽃 피 뱉고 떨어지는 뜨락


창(窓)을 열면
우윳빛 구름 하나 떠 있는 항구에선
언제라도 네가 올 수 있는 뱃고동이
오늘도 아니 오더라고
목이 찢어지게 알려 오노니
 

오라 어서 오라
행길을 가도 훈훈한 바람결이 꼬옥
향긋한 네 살결 냄새가 나는구나
네 머리칼이 얼굴을 간질이는구나


오라 어서 오라
나의 기다림도 정녕 한이 있겠거니
그 때사 네가 온들
빈 창(窓) 밖엔
멧비둘기만 구구구 울고
뜰에는 나의 뱉고 간 피의 낙화!

 

 

2011-01-022 / 토요일, 오전 11시 2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