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고형렬
세상은 조용한데 누가 쏘았는지 모를 화살 하나가 책상 위에 떨어져 있다.
누가 나에게 화살을 쏜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화살은 단단하고 짧고 검고 작았다. 새 깃털 끝에 촉은 검은 쇠. 인간의 몸엔 얼마든지 박힐 것 같다.
나는 화살을 들고 서서 어떤 알지 못할 슬픔에 잠긴다.
심장에 박히는 닭똥만한 촉이 무서워진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아파왔다.
―혹 이것은 사람들이 대개, 장난삼아 하늘로 쏘는 화살이, 내 책상에 잘못 떨어진 것인지도 몰라!
(『김포 운호가든집에서』.창비. 2001)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나희덕엮음. 삼인. 2008)
2010-07-15 / 22시 38분
화살/고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 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 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년 동안 가진 것
몇 십년 동안 누린 것
몇 십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든가
뭣이라든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 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 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온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시집《새벽길》(1978) 수록
-시선집 『한국의 명시』김희보 엮음
<최남선에서 기형도까지 1005편 총수록>
2010-06-04 / 22시 55분
내가 화살이라면/문정희
내가 화살이라면
오직 과녁을 향해
허공을 날고 있는 화살이기를
일찍이 시위를 떠났지만
전율의 순간이 오기 직전
과녁의 키는 더 높이 자라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팽팽한 허공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금빛 별을 품을 화살촉을 달고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고독의 혈관으로
불꽃을 뚫는 장미이기를
숨 쉬는 한 떨기 육신이기를
길을 알고 가는 이 아무도 없는 길
길을 잃은 자만이 찾을 수 있는
그 길을 지금 날고 있기를
-시집『다산의 처녀』(민음사, 2010)
2010-10-11 / 오전 10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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