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닮네요/이길원
밤새 고기 재우고 김밥말던 아내가
눈부비는 내게 운전대 쥐어주고
아침해 깨우며 전방으로 달리더니
"필승"이라 외치는 아들어깨 안고 애처럼 우네요
하루내내 기차타고 버스타고
전방에서 하룻밤을 기다리다
철조망 안에서 김밥 보퉁이 펴며
돌아서 눈물 감추던 어머니처럼
아내도 우네요
아픈데 없냐 힘들지 않냐 많이 먹어라
어머니가 제게 하시던 말을
아내도 하네요
손잡아 보고 얼굴 만져 보고
어머니가 제게 눈물 그렁이듯
그렁이네요
아내의 얼굴 속에
팔순 어머니
주름진 얼굴
<계란껍질에 앉아서>, 시문학사, 1998
KBS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특집 '시인만세'에서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라고 합니다. 1922년에 발표된 진달래꽃이 나온지 올해로서 86살, 사람으로 보면 완전 노년입니다. 그런데도 잊혀지기는커녕 대대손손 민족시로서 그 영광을 다른 시에게 물려줄 것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 수명은 무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럼 보통시의 수명(시효)은 얼마나 될까요. 자신의 경험을 말한 것이지만 오랫동안 글을 써온 어느 시인의 대담에서 보니까 대부분의 글은 5∼10년 정도면 없어지는 것 같은데 시는 한 세대정도는 충분히 가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시는 발표되는 시기에 잠깐 조명을 받았다가 사막의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시를 쓰는 많은 시인들이 돈도 안 되는 시를 붙들고 절차탁마,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시 한 편이라도 명시로 남아서 세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고 싶어서이겠지요. 이 시 의 발표연대가 몇 년도인지 정확히는 모르나 1998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된 시입니다.
지금은 군대생활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군대에 보내놓고 보고 싶어하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군대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거의 외동아들이다 보니 집에서 귀하게 자란 아들이 힘든 훈련은 잘 받는지, 혹여 다치지나 않았는지 예전의 어머니보다 걱정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 가도 군복을 입은 군인을 보게 되면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모두 다 내 아들같이 보인다고 합니다.
화자는 군에 간 아들을 면회 가서 아내가 아들에게 하는 일련의 행동을 보면서 그 옛날 군생활 할 때 면회 온 자기의 어머니가 한 행동을 그대로 하는 아내를 봅니다. 여자에게 있어 아들이라는 존재와 의미, 그리고 군이라는 특수사항이 어머니를 눈물짓게 하는데 자식을 향한 마음은 어머니나 아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것이 곧 여자의 마음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자식을 향한 한결 같은 마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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