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빈 자리가 가렵다/이재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7. 3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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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가 가렵다/이재무

 

 

 

새해 벽두 누군가가 전하는
한 선배 암선고 소식 앞에서 망연자실,
그의 굴곡 많은 이력을 안주로 술을 마시며
새삼스레 서로의 건강 챙기다 돌아왔지만
타인의 큰 슬픔이 내 사소한 슬픔 덮지 못하는
이기의 나날을 살다가 불쑥 휴대폰 액정화면
날아온 부음을 발견하게 되리라
벌떡 일어나 창밖 하늘을 응시하는 것도 잠시
책상서랍의 묵은 수첩 꺼내 익숙하게
또 한 사람의 주소와 전화번호 빨간 줄을 긋겠지
죽음은 잠시 살아온 시간들을 복기하고
남아 있는시간 혜량하게 할 것이지만
몸에 밴 버릇까지 바꾸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화제의 팔할을 건강에 걸고 사는 슬픈 나이,
내 축축한 삶을 건너간 마르고 창백한 얼굴들
자꾸만 눈에 밟힌다 십년을 앓아오느라
웃음 잃은 아내도 그러하지만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죽음을 사는 것인데
생의 종점에 다다를수록 바닥 더 깊어지는 욕망,
죽음도 이제 진부한 일상일 뿐이어서
상투적인 너무나 상투적인 표정을 짓고 우리
품앗이하듯 부의봉투를 내밀고 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죽음의 세포가 맹렬히 증식하는 밤
빈 자리가 가려워 전전반측 잠 못 이룬다

 

 

- 이재무 시집 저녁 6시 창비시선 282

 

 

 

 올 초 이 시집에서 이 시를 보고 난 뒤 책장을 덮고 볼 일을 보러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여름이 다 가는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해서 그런지 이 시가 유달리 기억에 더 남아 있는데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기저기서 몹쓸 병이 걸렸다는 말도 들리고 부고소식이 들려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핸드폰에 부고 문자가 찍혔습니다. 누가 사망을 하여 어느 병원에 안치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깜짝 놀랐습니다. 불과 3일전에 한 모임에서 만나 악수를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낮에 걷기운동을 나갔다가 비보가 전해졌다고 하는데 병명은 심근경색이었다고 합니다.

 

심근경색은 바로 수술을 하지 않으면 급사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말로만 아니라 병원에 있으면서 직접 겪어 보았습니다. 저보다 한 달 정도 오토바이사고로 허리 디스크와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삼십대 중반의 젊은 사람이었는데 병원 바로 옆 침대에서 한 달 정도 같이 얼굴 마주보고 밥을 먹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녁 잘 먹고 티브 잘 보고 22시쯤 바람쐬러 휴게실로 나갔다가 휠체어를 타고 급히 올라오더니 침대에서 가슴이 아프다고 몹시 괴로워하였습니다. 간호사가 달려오고 당직 의사가 쫓아오고 혈압을 재고 심전도 검사를 하는 동안의 시간은 불과 십 분 내외였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는 이내 의식을 잃었고 바로 중환자실로 내려갔지만 심폐소생술을 아무리 해도 깨어나지를 못했고 두 번 다시 침대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동네나 직장 동료 혹은 친지의 죽음에 덜컹덜컹 가슴이 내려앉더니 언제부터인가 죽음이 남의 일인양 되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부고소식이 자주 들리다보니 시에서처럼 죽음도 진부하고 상투적이 되어 갑니다. 정말 품앗이 하듯 부조봉투나 들고 찾아가거나 그도 안되면 온라인으로 부치고는 돌아서서 언제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또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병원물리치료실에서 보았습니다. 이십대 후반의 젊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육년이 넘도록 의식이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겨우 입술만 들썩이고 전기찜질을 하면 손이 움찔거릴 정도입니다. 뇌수술을 하여 깨어났지만 휴윳증으로 자제를 못해 쉴새없이 중얼거리며 듣기 거북한 쌍욕을 쉴새없이 하는 사람도 보았고 가족도 몰라보고 아기가 돼 더듬더듬 말 배우고 손발이 자유롭지 못해 기계에 의해 일어서는 연습을 하는 사람, 걷는 연습을 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들에게는 남들이 말을 하고 걷는 자유가 그저 부럽고 희망사항입니다.

 

'당신의 자산은 얼마입니까' 물어보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자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건강을 돈으로 환산을 할 수 없듯이 돈으로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건강한 육체에서 좋은생각이 나온다는 말처럼 건강은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하며 아껴야할 귀중하고 소중한 영혼의 그릇입니다.

 

92세의 남편을 떠난 보낸지 삼우되는 날 팔십이 넘은 동네의 할머니가 보고 싶고 허허로워 못 살겠다고 울먹입니다. 육친을 떠나보내 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보내 놓고 난 뒤 빈자리가 너무 커서 전전불매 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지독한 병고로 자리보전 하거나 큰 병에 걸려 수술을 하고 자반뒤집기를 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이 세상 '건강보다 큰 자산' 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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