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워리 비 해피 / 권혁웅
1.
워리는 덩치가 산만한 황구였죠
우리집 대문에 줄을 매서 키웠는데
지 꼴을 생각 못하고
아무나 보고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통에
동네 아줌마와 애들, 여럿 넘어갔습니다
이 피멍 좀봐, 아까징끼 값 내놔
그래서 나한테 엄청 맞았지만
우리 워리, 꼬리만 흔들며
그 매, 몸으로 다 받아냈습니다
한번은 장염에 걸려
누렇고 물큰한 똥을 지 몸만큼 쏟아냈지요
아버지는 약값과 고기 값을 한번에 벌었습니다
할교에서 돌아와 보니
한성여고 수위를 하는 주인집 아저씨,
수육을 산처럼 쌓아놓고 금강야차처럼
우적우적 씹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씹을 듯했습니다
2.
누나는 복실이를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해피야, 너는 워리처럼 되지 마
세달만에 동생을 쥐약에 넘겨주었으니
우리 해피 두배로 행복해야 옳았지요
하지만 어느날
동네 아저씨들, 장작 몇 개 집어들고는
해피를 뒤산으로 데려갔습니다
왈왈 짖으며 용감한 우리 해피, 뒷산을 타넘어
내게로 도망왔지요
찾아온 아저씨들, 나일론 끈을 내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해피가 네 말을 잘 들으니
이 끈을 목에 걸어주지 않겠니?
착한 나, 내게 꼬리치는 착한 해피 목에
줄을 걸어줬지요
지금도 내손모가지는 팔뚝에 얌전히 붙어있습니다
내가 여덟살, 해피가 두살 때 얘기입니다
-「마징가 계보학」창비 254
「하지홍 교수의 개 이야기」에 보면은 개의 조상은 늑대라고 합니다. 과거 일부 동물행동학자들이 늑대와 자칼의 교잡으로 인해 개가 생겨났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아시아 늑대가 개의 직접적인 조상이며 자칼이 개 혈통형성에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개는 온전히 늑대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믿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늑대, 코요테, 자칼은 서식지가 상당히 다른데 이 세 종류의 야생 갯과 동물과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개들 간에는 번식 장벽이 없으며 현재에도 교잡에 의해 잡종이 번식되고 생산이 된다고 합니다.
혈연이 가까워서 서로 간에 자유로운 번식이 가능하여 늑대, 코요테, 자칼, 개들 사이에는 수많은 잡종이 태어나는데 대형 고양잇과 동물인 호랑이와 사자 사이에서는 일대 잡종은 태어날 수 있지만 이대 잡종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호랑이와 사자도 계속 교잡을 하면 새로운 형태의 종이 탄생할 것도 같은데 혈연이 다르기 때문인지 일대가 크면 불임이 되어 더 이상 생산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교접이 가능한 개는 집 지키는 개, 목양견이나 조렵견, 군견, 사냥개, 사냥개도 시각 사냥개와 후각 사냥개와 나눠진다고 하는데 용도에 따라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지금은 종의 개체가 10억마리가 더 되는 것으로 추산이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영역에서 인간의 보호아래 개는 이렇게 많이 번성했는데 야생 늑대의 수는 10만도 못미친다고 하니 가히 인간의 힘이 놀라울 뿐입니다.
가축 일호로 인간세상에 발을 디디고 가장 일찍이 인간의 품안으로 들어와 인간과 같이 희노애락을 나누며 애완견에서 이제는 당당히 반려자로 신분을 격상시킨 개는 지구상에 그 어떤 동물보다 그 지위와 품위가 당당해졌고 종의 번식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야생화보다 화초가 질병에 약하듯이 애완견들도 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신라시대에도 신분제인 성골, 진골이라는 골품제도가 있었지만 유럽의 어느 한 왕가에서 유독 바보가 많아 우생학자들이 연구를 해본 결과 가까운 혈족간의 결혼인 근친상간이 원인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런 신분을 증명하는 제도가 개에게도 전수되어 이른바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이 되고 있는데 그 순종이 열등인자를 보유하여 각종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지요.
산허리를 자르고 도로가 나면서 로드킬로 산짐승들이 많이 죽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절되고 끊긴 생태계에 갇힌 동물들은 근친교배를 할 수밖에 없어 이런 현상이 오래가면 종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고 동물학자들은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가축화된 개는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식문화의 차이라기보다 대륙에 따라 개의 쓰임새가 달랐기에 다른 문화가 생겨난 것인데 개고기를 먹든 안 먹든 개에 대한 애련한 정서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정서가 어떤 것이든 간에 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한 마디 하고 싶어 입이 들썩들썩해집니다.
한 권의 시집을 전부 개에 대한 소재로 채운 시집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시인의 이름과 출판사를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손택수 시인의 「흰둥이 생각」도 가난했던 어린시절 개에 대한 아픈 정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시를 보는데 갑자가 팝송 한 곡이 생각이 났습니다. 몇 곡 알지도 못하는 팝송 중에 "돈 워리 비 해피" 라는 노래였습니다.
바비 맥퍼린이 불렀는데 권혁웅 시인이 이 노래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시를 감상하면서 이 노래를 들으면 묘한 합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예전의 우리네 정서속에 워리와 해피는 개의 이름이었습니다. 지금의 애완견처럼 방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개가 아니라 마당가에 매 놓고 발길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는 순하디 순한 순둥이 착한개였습니다.
걱정하지마, 걱정하지마,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문을 외듯이 외며 다 잘될거야, 행복할거라는 바비 맥퍼린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걱정도 근심도 다 사라지고 아픈 기억도 잊혀지면서 곧 행복이 눈 앞에 다가 와 있는 듯한 환상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걱정하지마 해피' 하면서 해피를 목줄에 걸어 아저씨들에게 건네주었는데 지금도 내 팔뚝의 손모가지는 얌전히 붙어 있다는 화자는 어릴 때 개가 남긴 추억이 상처와 아픔이 되어 가슴 한켠에 옹이로 박혀 있습니다. 해피와의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싶은데 죄책감 때문에 해피가 잊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걱정하지마 해피' 라는 시의 제목이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해피로부터 '괜찮아, 괜찮아 자책하지마' 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 워리 비 해피, 돈 워리 비 해피" <정호순>
Bobby McFerrin - Don't Worry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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