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묵비 /최명란
이승의 일
저승 가서도 고자질 마라
당장 잡혀갈 놈 수두룩하다
저승 가면
어떤 일도 말하지 말라고
아무 것도 일러주지 말라고
그들은
솜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말 날까봐 소리 새어 나올까봐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막았다
나는 죽었다
증거 인멸을 위하여
내 주검 속에 들어 있는
그 많은……
말 못할 사리들
(시와정신)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램덤하우스
아침 뉴스를 보니 봉하마을에 봉하대군이라고 불리었다는 전직 대통령 형이 결국 구속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단속을 하고 애를 써봐도 친인척이나 측근들의 권력형비리가 근절이 되지 않는 것은 든든한 동아줄만 잡으면 뭐든 해결할 수 있고 먹어도 소화불량에 걸릴 일 없다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 사람은 괜찮겠지 하고 믿어보면 또 속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세상에 믿을 사람 특히 정치쪽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속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묵비란 비밀로 하여 말하지 않음인데 사람들은 가슴속에 말못할 사리를 몇 개쯤 가지고 있겠지요. 사리가 되기까지 희열보다 고통이 따랐을 것인데 절에 가면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명부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이승에서 있었던 일들을 판가름하여 죄가 나누어진다 하는데 명부전에 가서 고자질 하면 봉하대군처럼 당장 잡혀갈 사람 많을 것입니다. 아무리 안 먹었다가 우겨봐도 사리가 있으니 들통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반칠환 시인의 시 「먹은 죄」에 보면은 새매가 지빠귀를 물어가고 물총새가 잠자리를 꿀꺽해도 유족들이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지요. 저도 증거를 가지고 있고 고자질 할 게 많은데 먹은 죄가 있어서 이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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