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색소폰 부는 걸인/최명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1. 10. 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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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부는 걸인/최명란


 

  북한산에 가면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가난하지 않은 내가 가난한 너를 잊어버릴 때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북한산으로 간다
  도봉산역에 내려 천천히 김수영 시비가 서 있는 북한산 입구로 걸어가면
  등 굽은 소나무 아래 날마다 색소폰을 부는 걸인 사내가 앉아 있다
  목발을 내려놓고 등산로에 남루한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 내려놓고
  색소폰을 부는 그 외발의 사내는
  색소폰을 불 때마다 파르르 김수영 시인의 풀보다 먼저 눕는다
  바구니에 동전 하나 떨어지는 소리가 북한산 솔방울 하나 떨어지는 소리 같기야 하랴
  지금까지 산을 오르는 동안 또 산을 내려가는 동안
  내가 그대를 속인 것은 그만큼 내가 나를 속였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동안
  북한산은 사내의 색소폰 소리를 들으며 웃기도 하고 삼천사 마애불과 손잡고 춤을 추기도 한다
  어느 달 밝은 밤에는 김수영 시인이 시비 속에서 걸어 나와 인수봉을 얼싸안고 춤을 추기도 하고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시비 앞에 쓰러져 잠이 들기도 한다
  눈 내린 겨울날 색소폰을 불다가 그 걸인 사내 앉은 채로 눈사람처럼 쓰러져
  응급실로 달려갔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빈 플라스틱 바구니만 등산로에 나뒹군다
  다시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북한산은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날마다 그의 색소폰을 대신 불고 있다
  가끔 김수영 시인도 막걸리를 마시고 시비에 기대어 색소폰을 분다
  어디선가 가난의 동전 하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시집『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랜덤하우스. 2008

 


언젠가 제가 관여하고 있는 카페에 올라온 시 가운데 ‘나팔꽃’이 들어간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정에 잠이 안 와 뜰을 걷다보니 나팔꽃이 활짝 피어 먼 데서 오는 사람처럼 그리움이 피어난다는 것이었지요. 나팔꽃은 이른 아침에 피는 꽃이니까 오류가 아니냐고 했더니 “잠이 안 와서 앞마당을 서성이다가 달밤에 핀 나팔꽃을 분명히 봤다” 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꼬리글을 올려 망신을 샀다고 하며 몹시 화를 내어 민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뒤 시에서 오류가 아마추어 시인만 아니라 기성시인에게서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에서는 사실과 진실이 있다고 합니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 에서 “애비는 종이었다”고 하는데 실제 서정주 시인의 아버지는 종이 아니고 ‘마름’이었다고 합니다. 마름은 주인을 대신하여 소작물을 관리하니 시실을 따지자면 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서정주 시인이 거짓말을 했나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시에서 이렇게 하는 거짓말을 두고 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기 때문에 따지면 안 된다고 이재무 시인은 말을 하더군요.


물론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은 '사실과 진실의 차이' 이지 오류는 아닙니다. 그럼 시에서 <사실의 진실과 오류>는 어떻게 다를까요. 위의 최명란의 시 <색소폰 부는 걸인>에서 그 예를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도봉산에 가면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길 바로 옆에 '풀'의 시인 김수영의 시비가 있습니다. 도봉서원 못 미쳤는가 조금 더 올라가서인가에 있는 시비에는 '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쪽으로 등산을 하거나 하산을 할 때면 한번씩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이쪽으로 하산을 하다가 입구에서 이 섹스폰 부는 걸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최명란 시인은 도봉산의 이 걸인을 풀의 시인 김수영과 버무려 한편의 시로 잘 빚어놓았습니다.


삼각산 자락에는 <국립4.19민주묘소>와 1907년 헤이그 밀사로 갔다가 일본의 방해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자 순국한 이 준 열사의 묘소를 비롯하여 독립운동가 신익희, 매국5적 성토 상소로 옥고를 치르고 성균관대학을 창립한 김창숙, 3.1운동 민족대표 이명룡, 건국훈장독립장을 받은 조병옥, 유림, 김병로, 신숙 등의 묘소가 있으며 이외에도 손병희, 광복군 합동묘, 지청천장군, 여운형, 이용문, 엄상섭, 서상일, 김도연, 양일동, 안중근의 장녀 안현생 등의 묘소가 있습니다. 음악가로는 현제명, 시인으로는 김억, 염상섭, 황석우 등과 함께 [폐허]의 동인이고 주요작품으로 아시아의 마지막 풍경, 방랑의 마음, 첫날밤, 해바라기 등의 작품을 남긴 공초 선생 오상순의 묘소가 있지만 김수영의 시비는 북한산(삼각산)이 아니라 도봉산 자락에 있습니다.

1행과 11행에서 보듯 즉 최명란 시인은 도봉산과 북한산을 같은 산으로 알고 있거나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반인들에게 북한산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산은 삼각산이고 우이령을 경계로 하여 남쪽의 삼각산(북한산)과 북쪽의 도봉산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이령길은 일명 김신조루트라고도 하는데 1968년 1월 21일 북한무장공비 청와대 침투사건이후 폐쇄되었다가 2009년 작년에 개방을 하였지만 생태보전을 위하여 인터넷을 통하여 신청한 등산객을 제한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소귀고개'로 알려진 우이령길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 우이동 일대를 연결하는 소로로 오래 전에는  생필품과 곡식을 운반했던 길이었으며 한국 전쟁 때는 양주, 파주, 연천, 철원 지역 주민의 주요 피난길로 이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럼 왜 시인이 도봉산과 북한산(삼각산)을 혼동하는지 두 산의 연혁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남쪽에 위치해 남한산이라 하듯 북쪽이라 하여 북한산인데 아래의 연혁에서 보듯이 두 산을 우리나라의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연혁
1983. 04. 02 북한산 국립공원 지정
1987. 07. 01 국립공원관리공단 설립
1987. 08. 05 북한산 동부, 서부관리사무소 개소
1998. 12. 17 북한산관리사무소, 북한산관리사무소 서부지소 명칭 변경
2004. 01. 30 북한산사무소, 북한산서부사무소 명칭 변경
2005. 10. 01 북한산사무소, 북한산북부사무소 명칭 변경
2006. 11. 27 북한산사무소, 북한산도봉사무소 명칭 변경


 

12행 “어느 달 밝은 밤에는 김수영 시인이 시비 속에서 걸어나와 인수봉을 얼싸안고 춤을 추기도 하고”라는 구절도 최명란 시인이 북한산이 아니고 도봉산이라 알고 있었다면 쓸 수 있었을까 하는 대목입니다. 도봉산의 최고 봉우리는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이고, 삼각산의 최고 봉우리는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인데 인수봉(810.5m)은 만경봉(799.5m)보다 높고 백운봉(836.5m) 다음 가는 두 번째 높은 봉우리로서 생김새 또한 여느 봉과 다르게 둥근 원통형(알봉)을 하고 있어 암벽가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올라보는 코스로 특이한 현상의 모양 때문에 시인들의 눈에도 이채롭게 보였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산이<북한산국립공원>이기는 하나 다른 산이라는 것입니다. 시를 두고 시로서 감상을 하면 그만이겠지만 북한산(삼각산)과 도봉산을 모르는 사람이 이 시를 읽게 되면 김수영의  시비가 도봉산이 아니라 북한산에 있는 것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시인이 한 편의 시에 무엇을 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나무 가지에 참나무 이파리가 붙어 있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닐까 싶은데 대부분의 사람들(평론가, 시인)은 이런 싯적 오류에 대하며 무척 관대한 것 같습니다. 시의 주제나 사상, 이념의 가치가 보다 중요하겠지만 시의 기능에서 미약하기는 하나 지적 기능을 무시하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아래 글은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 오류를 지적하는 어떤 분이 쓴 글입니다. 시로서는 훌륭하지만 사실적오류를 알고 나면 뭔가 떨음 감을 먹은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시의 품격이 낮아지는 것처럼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 어느 카페에 올려둔 위의 글을 읽고 ‘바보천사’를 닉네임으로 쓰는 분이 이런 내용을 올려주셨습니다.

 

  시에서의 오류라니 생각나는 게 있네요. 2005년 ‘시인들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 시’에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가 선정됐었는데 그 시를 읽고 조금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환자의 이미지를 참 적절히 표현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만 본문을 보면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가자미의 눈은 원래 떨어져 있다가 한쪽으로 몰린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렇게 썼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년의 이미지로 차용했다는 이야기 같은데 본인처럼 해양업에 오래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도시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가자미 옆에 가자미가 누우면 서로 마주볼 수 없지요.

 

  또 있습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는 표현. 가자미는 헤엄칠 때 위아래로 흔듭니다. 수족관에 가시면 자세히 보십시오. 뭐 제가 트집을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인들이 잘 아는 풍경을 이런 식으로 묘사했다면 좋은 시는 그만두고 웃음거리가 될 것인데 제가 이걸 지적했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들이더군요. 자세한 것은 다음 기회가 되면 기술하기로 합니다만 이 사건은 아마 시적 표현의 대표적인 오류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 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