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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사라져가는 말- `배코`의 추억
이를 계기로 의병 활동이 확산되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단발령(斷髮令)'에 대한 풀이다.
그 뒤 15년이 흐른 1910년 8월22일 일제의 침탈로 한 · 일 간 강제 병합조약이 체결됐다.
공식 발표는 1주일 뒤인 29일 이뤄졌는데, 이날을 계기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경술국치를 맞았다. 며칠 뒤인 9월10일 매천 황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 일이다.
'……조정을 생각하면 두 눈물만 흘릴 뿐이지만…… 자리 가득 솔바람에 무릎 안고 앉아 조누나. '
최근 번역돼 나온 《매천집》에 실린 그의 단발령 소회는 당시 힘없는 민족의 백성으로 겪는 참담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대한제국 말 의병활동의 도화선이 됐던 단발령은 한마디로 '상투를 틀지 말라'는 정부의 명령이었다.
'상투'는 '예전에, 장가든 남자가 머리털을 끌어 올려 정수리 위에 틀어 감아 맨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투를 짜다/상투를 틀어 올리다'처럼 쓰인다.
예전에는 상투를 틀지 않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른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런 풍습은 말 속에도 스며들어 관용구로 '상투(를) 틀다'라고 하면 '총각이 장가들어 어른이 되다'란 뜻이 됐다.
상투를 틀기 전에는 머리를 땋아 '댕기머리'를 했는데,'댕기'란 길게 땋은 머리끝에 드리는 장식용 헝겊이나 끈을 말한다.
'댕기머리'는 여자만 하는 게 아니라 남자도 한 것이다.
'상투'는 요즘은 새로운 뜻을 하나 더 얻었는데, '최고로 오른 주식 시세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정식으로 단어의 지위를 얻은 말이다.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은 항상 오르내리는데, 어떤 흐름상 상승 추세에 있을 때 그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하는 순간, 즉 꼭대기란 의미로 쓰인다.
머리에 트는 상투를 여간해선 보기 힘든 지금 사람들은 아마 '꼭지에 오른 시세'란 의미의 '상투'에 더 익숙해 있을 것 같다.
이미 관용구도 만들어져 '상투(를) 잡다'라고 하면 '(속되게) 가장 높은 시세에 주식을 매입하다'란 뜻이다.
"상투를 잡는 바람에 손해 봤다" 식으로 쓴다.
'상투'는 어원적으로 상두(上頭)에서 샹토를 거쳐 샹투, 상투로 바뀐 말이다.
우리말에는 가령 백채(白菜)에서 배추가, 산행(山行)에서 사냥이, 침채(沈菜)에서 김치, 부어에서 붕어, 초생달(初生-)이 초승달로, 중생(衆生)이 짐승으로, 이생(-生)/저생(-生)이 이승/저승으로, 차양(遮陽)이 챙으로, 벽창우(碧昌牛)가 벽창호로, 도장(道場)이 도량으로, 목단(牧丹)이 모란으로 바뀌는 등 한자어에서 변한 말이 꽤 많다.
1985년 사망한 미국의 명배우 율 브리너의 독특한 헤어 스타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떤 이는 머리숱이 많아 매일 다듬는 게 귀찮아서 일부러 머리를 빡빡 미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하는 말이 "백구 쳤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없고 '배코 쳤다'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다.
'배코'는 상투를 앉히려고 머리털을 깎아 낸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상투를 틀 때 먼저 정수리 부근, 즉 상투를 앉힐 자리 주변의 머리를 깔끔하게 깎았다.
관용구도 생겼는데, '배코(를) 치다'라고 하면 원래 '상투 밑의 머리털을 돌려 깎다'란 뜻이다.
'배코를 친 머리' 식으로 쓴다. 여기서 나아가 나중에 '머리를 면도하듯이 빡빡 밀어 깎다'란 뜻이 더 생겼다.
'그의 머리는 배코를 쳐 빤들거렸다/그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면도날로 배코를 쳐 언제나 윤나는 빡빡머리였고…' 식으로 쓰인다.
'배코'는 어원적으로 백회(百會)가 음운 변천을 일으켜 굳어진 말로 설명된다.
(김민수 편,<우리말 어원사전>).
백회 또는 백회혈은 국어사전에 오른 말은 아니지만, 예부터 동양사상을 비롯해 한의학에서 정수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수리는 머리 꼭대기의 숨구멍 자리를 가리키는데, 온몸의 경혈이 이곳에 모이는 가장 중요한 자리라는 의미에서 백회라 불리기도 한다.
배코 친 머리는 '까까머리'와 비슷한데, 이는 빡빡 깎은 머리, 또는 그런 머리 모양을 한 사람을 가리킨다. '빡빡머리'와 같이 쓰인다.
까까중머리는 '까까머리'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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