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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문화재 탐방-심곡서원] 조광조 뜻 기리고자 세운 서원, 그의 청렴함 닮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9. 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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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재 탐방-심곡서원] 조광조 뜻 기리고자 세운 서원, 그의 청렴함 닮아 

 

 

 
▲ 조광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심곡서원의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겨울 앙상해진 나뭇가지들만 서원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추운 날씨 탓인지 찾아오는 인적이 드물었다. 경기도 용인에 자리한 심곡서원은 그렇게 조용히 뜻을 이어가고 있었다.

서원 내 특별하거나 두드러진 특징을 갖는 건축물이 있지는 않다. 그래서 구 1천 원권 지폐 속 ‘수려한 서원’을 예상하고 서원을 찾는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더구나 모든 나뭇잎이 다 떨어져 버리는 겨울이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소박함, 그게 겨울 심곡서원의 매력이다. 차디찬 손을 호호 불어가며 건축물 하나하나에서 옛 시대를 떠올려 보거나, 그곳에 담긴 조광조의 뜻을 되새기면 그 매력에 금방 빠져들게 된다.

겨울 서원은 단풍으로 물든 가을 서원이 주는 것과는 또 다른 선물을 꺼내놓는다. 특별한 치장 없는 소박한 모습은 조광조가 보여준 청렴한 성품과 닮은 듯하다.

   
▲ 궁이나 묘, 능 따위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에 왔음을 알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심곡서원은 정암 조광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조광조는 조선 중종 때의 정치가이자 개혁가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해했던 중종과 훈구파에 의해 기묘사화로 유배됐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 뜻을 이어가고자 세운 사원의 전체적인 구조는 뒤편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언덕모양이며, ‘전학후묘(前學後廟, 앞쪽에 공부하는 곳 뒤쪽에 사당 배치)’ 형태다. 이 같은 형식은 성현을 모시는 사당을 더욱 높이려는 뜻이 담긴 구조로 향교‧서원 배치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인 일소당은 유림들이 모임을 열거나 강론하는 강당으로 사용됐으며, 조광조의 절명시에서 이름을 유래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우국충정 담겨 있는 ‘일소당’
신성한 지역에 왔음을 알리는 홍살문(궁이나 묘, 능 따위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을 지나 외삼문을 통과하면 앞에는 ‘일소당(日昭堂)’, 양 옆으로는 동‧서재가 보인다. ‘일소당’이라는 이름은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기 전 남긴 시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하였네. 해가 이 땅을 굽어보니, 나의 붉은 충정을 비추리(정암 조광조의 절명시).’

마지막 순간까지 우국충정 했던 그의 뜻을 기리고 이어가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인 일소당은 유림들이 모임을 열거나 강론하는 강당 역할을 담당했다. 가장 큰 특징은 나무판으로 된 각 칸 벽에 판자문비가 있어 어디서든 문이 열리는 개방적인 구조라는 점이다.

일소당을 찬찬히 살펴보니 처마 밑 땅에 구멍이 줄줄이 뚫려 있다. 알고 보니 처마 기와모양을 따라 빗물이 떨어지면서 땅이 파인 모양이다. 서양식 건축들이 들어서면서 지붕이 있는 건물이 드물어진 요즘, 이런 소소한 것도 정겹고 어여쁘게 느껴진다.

동‧서재는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됐다. 동재 옆으로는 나무 하나와 작은 연못이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500살 된 이 나무는 아무리 팔을 크게 벌려도 안기지 않을 만큼 매우 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그 앞에 있는 연못은 한파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서원 건물과 연못 사이에 움푹 파인 길이 났는데 서원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이 이 연못으로 모이는 듯했다. 이 나무와 연못은 조광조 선생이 직접 심고,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원 가운데 자리한 일소당을 지나 오른편에 있는 건물이 ‘장서각’이다. 이 장서각에선 67종 486책을 소장했으나, 1985년 책을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해 현재는 ‘정암집’ ‘조선사’ 등만 전해진다.

   
▲ 심곡서원 장서각 ⓒ천지일보(뉴스천지)


   
▲ 사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내삼문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리고 일소당 정면에는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이 들어서 있다. 내삼문에는 외삼문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다. 사당에는 조광조와 양팽손의 위패가 봉안돼 있으며 매년 이곳에서 음력 2, 8월에 향사를 지낸다고 한다.

   
▲ 심곡서원을 조금 걸어 나오면 하마비가 보인다. 하마비 앞을 지나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한다. 여기에는 서원에 모셔진 선조의 공적에 경의를 표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정암 조광조가 잠든 곳
발걸음을 돌려 조광조 선생의 묘소로 향했다. 심곡서원은 조광조 선생의 묘소 맞은편에 지어진 터라 걸어갈 수 있는 짧은 거리에 묘소가 있다.

가는 길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하마비 앞을 지나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한다. 여기에는 서원에 모셔진 선조의 공적에 경의를 표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서원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조광조 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명장터로 알려진 묘소 입구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고 조그만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조광조의 묘소가 나온다.

이렇게 한 바퀴를 다 둘러보고 나면 조광조 선생의 발자취와 그 사상을 한번쯤 더 생각해볼 수 있다. 때문에 무작정 가는 것보다 조광조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서원 구조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간다면 더욱 풍부하게 둘러볼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