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배후를 보여 드릴까요
차주일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면 꽃을 오독한 것입니다
꽃을 보려면 꽃의 요람을 독해해야 합니다
눈 감아야만 보이는 잔상을 관조해 본 적 있나요?
자신의 요람을 보려는 사람은 흔치 않더군요
사람은 왜 외면하는 거죠? 마음이 태어난 곳을;
말이 생겨나기 이전 최초의 이성(異性)을 초대한 곳을,
그 피사체의 움직임대로 문자를 만들고 혀 구부려
입술 구조를 결정하던 곳을,
상상해 봐요,
사람의 음성을 끌어올리려는 암컷의 혀를;
해독 불가해서 완전한 수컷의 사랑 고백에
카오스(chaos)*의 무질서로 자유롭게 손 빌며 대답을 갈구하던 입모양을.
더듬거리는 입술은 꽃잎의 생김새죠.
사람들은 왜 무질서의 멸종을 방관하는 거죠?
꽃의 종류만큼 무한했던 언어가 사라지는 지금을,
꽃잎의 방향만큼 변화무쌍했던 감정이 사라지는 지금을.
질서가 침범할 수 없도록 잠가놓은 당신의 잔상 속에서
수화(手話)하던 연인의 발음기호를 복기해 보세요.
무질서한 꽃 뿌리가 그려질 거예요;
얽히고설켜서 완전한 손놀림이 보이면
눈을 뜨고 입술에 자유를 넘겨줘 보세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손짓이 아닌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묵음으로 자유롭게 말하게 되죠.
그런데 참 이상하죠?
언제나 완전무결하게 전달되는; '사랑'이라는 말
잔상과 땅속과 요람을
이음동의어라고 여기는 사람의 사전이 사랑임을 믿나요?
제사장의 임무는
꽃잎을 통제해서 사랑을 훼방 놓는 것이죠.
제사장이 자유분방한 꽃잎을 추방하면서부터
꽃잎과 뿌리 사이에 질서가 생겨났죠.
질서는 한눈으로 볼 수 없어 동등하게 보이는 높낮이이죠.
꽃잎이 질 때,
기억 밖에서 존재하는 궤적만 보이던가요?
이성에게로 향하는 행로가 보이지 않음은
제사장이 꽃향기로 풍경을 채색했기 때문이죠.
여덟 꽃잎만 남은 코스모스(cosmos)*는 질서를 세뇌 당하고 있죠.
무한한 입술 생김새에서 겨우 여덟 개만 남았다니요.
여덟 종류 언어 밖에 존재하는 사랑은 어쩌죠?
이제, 눈을 감고 잔상을 탁본하는 당신이 보이겠군요.
자신의 요람은 무질서한 입술을 굴리기에 적당한 수평이죠.
희생된 꽃잎의 생김새를 입술에 실어 나오세요.
뿌리의 자세로 합장한 손에 입 맞춰 보세요.
아니지요. 손을 올려 입에 대는 건 제사장의 질서공식이죠.
입을 낮춰 손에 대는 게 잔상 밖으로 나가는 문이잖아요.
낯선 세계에 도착했다고 걱정하지 말아요.
손가락 생김새를 배후로 섬긴 입술은 지지 않잖아요.
고꾸라진 꽃이 고붓한 태아의 자세로 씨앗을 빼돌리고 있네요.
꽃잎과 뿌리가 맞닿은 꽃의 수평을 정독해 보세요.
입과 손을 마주하고 높이를 지운 구부림에는
아홉 번째 언어와 감정이 고여 있었을까요?
*카오스(chaos): 코스모스에 대립하는 그리스어로 혼돈의 세계
*코스모스(cosmos): 카오스에 대립하는 그리스어로 질서의 세계
-월간『현대시학』(2012년 4월호)
2012-10-03 수요일 2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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