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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몸져누운 날은
고정희
오월의 융융한 햇빛을 차단하고 아파서 몸져누운
날은 악귀를 쫓아내듯 신열과 싸우며 집안에 가득한
정적을 밀어내며 당신이 오셨으면 당신이 오셨으면
하다 잠이 듭니다
기적이겠지 기적이겠지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이 대낮에
이심전심이나 텔레파시도 없는 이 대낮에 당신이 내
집 문지방을 들어선다면 나는 아마 생의 최후 같은 오
분을 만나고 말 거야 나도 최후의 오분을 셋으로 나눌
까 그 이분은 당신을 위해서 쓰고 또 이분간은 이 지상
의 운명을 위해서 쓰고 나머지 일분간은 내 생을 뒤돌
아보는 일에 쓸까 그러다가 정말 당신이 들어선다면
나는 칠성판에서라도 벌떡 일어날 거야 그게 나의 마
음이니까 그게 나의 희망사항이니까…하며 왼손가락
으로 편지를 쓰다가 고요의 밀림 속으로 들어가 다시
잠이 듭니다
흔들림이 끝난 그 무엇처럼
―고정희 지음『고정희 시전집 세트 2』(또하나의문화, 2011)
2012-10-09 화요일 오전 0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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