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기다리며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시집『바닷가우체국』(문학동네, 1999)
누군가를 그 무엇을 기다려 본 적이 있나요. 화자는 장생포 바닷가에서 고래를 기다립니다. 고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갔을까요. 화자는 무엇 때문에 애틋하게 고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시에서 고래는 그리운 사람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이상향일 수도 있으며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존재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오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쳐 가는 게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래를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당신은 고래를 기다려 본 적이 있나요. 당신에게 있어 고래는 무엇이며 누구이며 그 고래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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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을 지나며
이건청
고한읍 어딘가에 고래가 산다는 걸 나는 몰랐다. 까아맣게 몰랐다. '사북사태' 때도 그냥 어용노조만 거기 있는 줄 알았다. 혹등고래가 산 속에 숨어 탄맥을 쌓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막장인줄만 알았다. 푸슬푸슬 내리는 눈발이 아이들도 개도 지우고 유리창도 깨진 사택들만 남아 있는 줄 알았다. 고래가 사는 줄은 몰랐다. 역전 주점, 시뻘겋게 타오르는 조개탄 난로의 그것을 불인줄만 알았다. 카지노 아랫마을 찌그러진 주점에서 소주잔을 들어올리는 사람들의 한숨인 줄만 알았다. 검은 탄더미인 줄만 알았다. 그냥 석탄인 줄만 알았다.
(『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세계사. 2005)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4편 수록 중 1편. 2007)
안도현 시인이 존재의 부재를 위한 노래라면 이건청 시인에게 있어 고래는 탄광촌의 저탄장이며 막장이며 광부가 됩니다. 1980년 4월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 있던 강원도 동원탄좌사북광업소에서 대규모 노사분규가 일어납니다.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이었습니다. 어용노조가 광부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회사측과 소규모 인상안을 합의하는 바람에 광부들과 그 가족들까지 들고일어난 엄청난 규모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이 부른 이 사태는 노사분규의 서막이 되어 이후 민주화의 열망과 함께 노동운동의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사태로 인하여 사북광업소의 어용노조는 모든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고 화자 또한 그 곳엔 어용노조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곳엔 흰 눈도 녹으면 검은 물로 흘러내리고 깨어진 유리창도, 그 속에서 얼비치는 아이들도 개도, 즉 탄광촌 풍경의 모두가 아픔의 되는 고래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등고래가 살던 탄광촌은 에너지 사용이 석유와 가스의 변천을 거치는 동안 지금은 폐광촌이 되었습니다. 남은 고래들은 진폐증과 규폐증으로 앓고 있으며 희망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래가 어디 그 곳에만 있겠습니까. 아직도 많은 고래들이 전국 곳곳의 노동현장에서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연좌제처럼 달고 표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정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