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김규동
빈 몸으로 왔다
바다
그래도 고마워서
온몸으로 반기는 바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바쳐야 할 것이냐
말하여라 말하여라
망설임도 꾸밈도 없이
네 본연의 목소리로.
-시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6』(국립공원, 2007)
열 줄도 안 되는 짧은 '시'입니다. 첫 행부터 '빈 몸으로 왔다' 고 말하는 화자의 어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언뜻 비장한 것 같기도 하고 작정한 듯한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듣는 바다(청자)는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도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반갑다고 합니다. 빈 몸으로 왔다고 하는 화자와 그래도 반가이 맞는 청자 모두에게 꾸밈이 없는 가식이 없는 세월을 살아온 연륜의 진솔함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시에서 나오는 바다를 고향, 부모, 형제라고 바꾸어서 읽어봅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추석이 예전만 못하고 명절 기분도 덜 나지만 그래도 고향 가는 열차표는 몇 분만에 매진이 되고 고향 가는 길은 여전히 밀릴 것입니다. 밤샘을 해서 기다려 열차표를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 밀리는 도로는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휴게실에 들려 쉬어가려고 해도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생리현상이 급해도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어려워 길가 풀숲으로 뛰어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고생을 감내하면서까지 무작정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고향은 태어난 의미 말고도 그곳에는 반가운 부모님과 형제들이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형제들은 찾아오는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건강하게 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어릴 때 같이 했던 유년의 시간들이 즐거울 뿐입니다. 고향은 닫힌 마음을 열어볼 수 있는 본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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