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가득과 가족 사이 / 이희섭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9. 2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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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과 가족 사이


이희섭

 


아내와 여행을 가다가
싸우고 돌아오는 길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어간다


'가득이세요' 라는 말이
'가족이세요?' 라는 말로 들리는 순간


가득과 가족 사이에서 잠시 묘연해진다


가득이라는 것은
바닥난 속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고
가족이라는 것도
서로의 빈곳을 채워주어야 하는데


아내는 옆자리에서 눈감고
메마른 유전을 건너가고 있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금세 빠져나가는
사소한 빈틈
서로 다른 곳을 적시고 있는 건 아닐까
가득이 가족으로 들리는 배후가 궁금해진다

 
연료가 소진되며 자동차가 굴러가듯
그동안 우리 사이에 소진된 것은 무엇인가
소모되는 것들의 힘으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닥난 가족을 가득 채우러
다시 길을 떠난다

 

 


-시집『스타카토』(황금알, 2012)

 

 


   어제 신문을 보니 올해부터 1인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 가운데 가장 커졌다고 한다. 무려 4집당 1집 꼴이라고 한다. 인구관련 통계를 조사한 이래 처음이라고 하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2인 가구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올해는 2인 가구보다 무려 1만 가구를 앞섰다고 하는데 연령대별로 보면은 57.9살에로 65살 이상 노인 비율은 26%에 이르며 여성 비율도 54%로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통계로 봐서는 딸 아들 다 보내고 부부가 살다가 이별을 한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도 부모 슬하를 떠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국가의 공공정책이 다인 가구 쪽에 맞춰져 있어 이렇게 혼자 살게 되면 불리하다. 동거 가족이 없으면 국가가 지원하는 싼 서민 전세자금 대출도 받을 수도 없고 세금 부담도 늘어난다. 부양가족이 없으면 부양 수대로 받는 기본 소득공제부터 부녀자 공제, 월세 소득 공제도 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젊은 사람들의 결혼시기가 늦어지고 기피하는 현상이 보이는 것은 화려한 싱글이 좋아서가 아니라 경제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까짓것 물려받은 유산 있고 직업 탄탄하고 능력만 있다면 다 뿌리치고 혼자 살면 편할 수도 있겠다. 여성 같은 경우엔 보호자가 없어 치안으로는 좀 불리하기는 하지만 어디 가고 싶다거나 여행도 홀가분하게 할 수 있겠다. 가끔은 외롭고 고독한 것쯤은 감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외롭고 고독한 것은 둘째치고 여행도 혼자 하면 재미가 덜하다.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영화관을 가도 혼자 영화 보는 센티한 낭만 같은 것도 없다. 친구가 일정부분을 채워줄 수는 있겠지만 빈자리를 늘 메워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한 것도 많다.


  시 속에 나오는 부부는 여행을 갔다가 다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무엇이 원인이 되어 여행을 포기할 정도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럴 때 남자는 참으로 난감하다. 나름대로 벌어진 사소한 빈틈을 메우려고 해보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지 옆자리의 아내는 눈만 감고 있다.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에 들렸는데 '가득' 넣을까요 묻는 말이 '가족'처럼 들려온다. '가득' 이라는 말이 '가족'으로 들여오는 순간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싸움의 발단이 어디에 있든 길게 가서 좋을 건 없을 것이다. 알량한 자존심이 잘 허락하지는 않지만 누가 한 쪽이 먼저 사과를 하면 될 것이다. 부부사이 시시비비, 잘잘못은 가려서 무엇하겠는가. <정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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