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고 -수필

밤 바닷가에서 / 송경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9. 24. 09:03
728x90

밤 바닷가에서


송경동

 

 

밤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파도가 철썩철썩인다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 말한다


이 밤에도 돌고 있는 라인이 있다고
파도가 겹겹이 밀려든다
나는 이제 모른다 모른다 한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파도가 내 가슴을 냅다 후려쳐버린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자갈처럼 구르며 울고만 싶다


20년 노동운동한다고 쫓아다니다
무슨 꿈도 없이 찾아간
밤 바닷가

 

 

 

(시에, 겨울호)
-이은봉·김석환·맹문재·이혜원 엮음『2011 오늘의 좋은시』(2011, 푸른사상)

 

 


  화자는 아마 밤바다에 홀로 서 있는 듯이 보입니다. 불빛이 멀리 보이는 해변 한 구석이나 등대만 깜박이는 방파제 어느 한 귀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뜻이 있어 찾은 것은 아니지만 밤 바닷가를 찾은 화자에게 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파도가 말을 합니다. 20년 동안 노동운동을 몸으로 직접 겪어온 화자이기에 파도소리마저 공장 라인이 돌아가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렇지 않다고 부정을 해보지만 부정을 하면 할수록 불가항력입니다. 파도는 이 시대의 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주유소에서 24편의점에서 시간제로 피자배달을 하며 알바를 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임시직, 일용직, 기간제 근로자들이 지금도 넘쳐납니다. 파견근로자라고 해서 같은 일을 하고도 같은 임금을 못 받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명절 보너스도 없고 정규직이 이용하는 체육시설도 이용할 수 없으며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각종 수당도 못 받고 무엇보다 신분보장이 되지 않아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고도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분통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들리는 파도소리는 같은 파도소리일 수가 없습니다. 당신에게 들리는 파도소리는 어떤 소리로 다가오는지요. <정호순>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고개 / 고영수  (0) 2012.09.28
가득과 가족 사이 / 이희섭  (0) 2012.09.28
금붕어의 건망증 / 오명선  (0) 2012.09.19
도서관은 없다 / 최금진  (0) 2012.09.15
웃은 죄 / 김동환  (0) 201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