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채식주의자들 / 이이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21. 08:52
728x90

채식주의자들


이이채

 


 감각을 격리시킨 채로 이야기한다. 내가 이끼 낀 문명에서 태어
났을 즈음이었다. 알을 못 낳은 암탉들이 속된 사랑에 감염되었다.
문지기는 뇌쇄적인 실연괴물, 쾌락과 타락을 음미하느라 밤색 머
리의 처녀를 잊지 못한다. 성년식, 술에 취해 옷을 반쯤 벗어젖히
곤 이단(異端)하듯 놀아나던 촌뜨기들. 쥐덫의 둘레를, 괴혈병 걸
린 고양이는 제어할 수 없는 욕망으로 돌았다. 늦가을 들판에 우
거져 있던 낯선 색깔들이 성가신 우연처럼 자꾸 눈에 거슬렸다.
그대들은 내일 미끼로부터 배척되어라. 거울을 상실 당한 쌍둥이
형제들은 서로를 탐했다. 때로 문지기는 자신의 가면 쓴 얼굴을
곡예라고 곡해했다. 유형은 치명적이었으므로, 들판에는 망원경
으로도 풍요로울 차례가 오지 않았다. 흔적보다 더 진한 외상을
찾고 있다. 똥파리들이 닭장의 마디마디에 맺혀 있었다. 변성
기 갓 지난 아이들은 출혈이 멎지 않자 통곡했다. 나는 풍향계
를 믿어 본 적이 없다.

 

 

 

-계간『미네르바』(2011, 봄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1 올해의 좋은 시 100選』(아인북스, 2011)
2012-10-21 일요일 08시 51분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를 심으며 / 문숙  (0) 2012.10.22
상카샤 / 차창룡  (0) 2012.10.22
동물농장을 읽는 밤 / 최금진  (0) 2012.10.20
매혹 / 심보선  (0) 2012.10.19
인생 / 이기철  (0) 2012.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