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을 읽는 밤
최금진
너는 거기에 묶여서 육성으로 공산당선언문을 읽고 있었다
노간주나무 코뚜레를 지하철 손잡이마냥 걸치고서
칸칸의 축사를 운행하는 소울음 소리에
졸리고 고단한 생애를 묶어두고 있었다
꺼내달라고 말할 발언권이 내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이 너의 나라였으므로
여물이 근로수당으로 주어지고
자가발전으로 돌아가는 네 육체의 빈 건물들에 대해선
어떤 세금도 매길 수 없어서
아침 일찍 도축업자는 아직 덜 익은 네 눈동자를 보고 돌아갔다
너는 슬픔이 없구나, 목에 걸린
방울을 통행증처럼 치고서 국경을 넘듯 풀밭에서
축사로 돌아오던 네게
어떤 현대식 자장가를 불러줄까 생각했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만이 의료보험료를 안 내는 길이니까
컨베이어 벨트가 나눠주는 안내서를 따라가면
눈알만 남은 너의 동무들이 공중에 실려 다닌다
패배의 무게를 모르는 저울은
부르주아들처럼 다만 헐값을 위해 육체를 흥정한다
해방, 해체와 같은 잔뜩 기울어진 낱말들의 경사면에서
너도 언젠가 도끼나 칼을 정면으로 맞게 될 것이다
한 손엔 고삐를 , 한 손엔 사료를 들고 있는
이 끔찍한 킬링필드의 주인은 왕도 주교도 아니다
이 좋은 세상, 너는 왜 울려고만 하는가
농장주인은 네 친구들을 위해 심리상담사를 고용하진 않는다
가축들을 위한 수면제는 앞으로도 개발되지 않는다
너는 고개를 숙이고 아주 조그맣게
인민해방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건 장송곡이 아니어서 음정을 자꾸 틀리고, 너는
내일도 풀밭에 나가 종일 질긴 풀을 뜯고 돌아와야 한다
저가 뿔 없는 나방들이 텅 빈 불빛을 향해 머리를 치받듯이
-계간『시와사람』(2010, 겨울호)
2012-10-20 토요일 오전 10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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