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바람'은 새벽에 부는 쌀쌀한 바람입니다. 해 질 녘에는 '해걷이바람'이 불고, 밤에는 '밤바람'이, 저녁 늦게는 '늦바람'이 붑니다. '올바람'은 바람이 많이 부는 철에 앞서 부는 바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바람은 언제 어떻게 부는가에 따라서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고 생원은 싸늘한 새벽바람 속에 쿨룩쿨룩 기침을 하기도 했다. <하근찬, 족제비>
이미 밤 깊은 시각, 인적이 끊어진 주택가 골목길을 밤바람만 할퀴고 있었다.
<이동하, 김씨에 관한 추측>
'봄바람'은 그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바람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들뜬 마음이나 행동'을 뜻하기도 합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바람 중에서도 꽃이 필 무렵의 '꽃바람'이 부는 날에는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꽃 피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불 때는 장롱 안에 두었던 두꺼운 옷을 입고 나서야 합니다. 바람이 꽤 쌀쌀하여 얇은 옷을 입고 나갔다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거든요. '소소리바람'은 이른 봄에 살 속으로 스며들듯이 차갑게 부는 바람입니다.
마리아는 아이를 데리고 이따금 여가를 내어 꽃바람이 그윽히 불어오는 들판으로
나갔다. <권정생, 나사렛 아이>
무덤 앞에는 고개 꺾고 핀 한 송이 할미꽃이 꽃샘바람에 떨고 있다.
<김원일, 세월의 너울>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은 느린 진양조 가락의 판소리 애원성
같기도 하고 ······ 때로는 소소리바람에 갈잎 떠는 소리거나 소름이 돋는 비명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문순태, 안개섬> '색바람'이나 '서늘바람'은 이른 가을에 부는 서늘한 바람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완연한 가을에는 '소슬바람
蕭瑟--'이 불어 사람의 마음을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지요. 서리가 내린 날 아침에는 '서릿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것이겠지요.
날씨는 차츰 서늘해지면서 곡식 잎들을 말리는 색바람이 불어 왔다.
<김송죽, 번개 치는 아침>
초가을 저녁의 서늘바람이 떨어진 나뭇잎을 몰고 지나갔다. <오학영, 석영> 짙푸른 녹음과 함께 산골짜기마다 진을 쳤던 무더위는 팔월이 가고 구월이 오면서
시나브로 사위어 가고, 잎들이 누릿누릿 물들어 가는 산줄기로는 소슬바람이 소리 낮게
스쳐가고는 했다. <조정래, 태백산맥> '누릿누릿'은 '노릿노릿'의 잘못된 말이나 필자의 의도를 고려하여 그대로 인용함가을 비낀 언덕엔 강물이 잔잔하고 고개 위의 구름은 저녁노을이 물드는데
서릿바람 받으며 기러기 울어 예니 걸음이 멎어진 채 차마 길을 못 가누나.
<최미나, 이슬의 얼굴> 절기나 날짜에 따라 부르는 바람의 이름 중에는 한자어가 많습니다. '융풍
融風'은 입춘에 부는 바람이고, '화신풍
花信風'은 꽃 소식을 전하여 주는 봄바람입니다. 음력 5월에 부는 '박초풍
舶趠風'은 배를 빨리
달리게 하는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초여름에 보리 위를 스치며 훈훈하게 불어오는 '맥풍麥風'도 있습니다. '금풍
金風'은 가을바람의 다른 이름인데, 가을이 오행 중에 '금
金'에 해당한다는 데서 이르는 말입니다.
창밖에 금풍이 소슬해서, 그 사람이 유난히 고매하게 느껴졌다. <정비석, 산정무한> 전설에 얽힌 바람도 있습니다. 고려 때, 임금이 탄 배의 사공인 손돌이가 풍파를 피하여 가자고 하다가 의심을 받고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 후로 음력 10월 스무날 무렵이면 그 원한으로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때 부는 매서운 바람을 '손돌이바람
孫乭---'이라 하고, 이날의 추위를 '손돌이추위'라고 한답니다.
은빛 눈보라는 곧 심상치 않은 추위가 닥쳐올 조짐 같아 태임이는 어깨를 웅숭그렸다.
'지난번 손돌이추위도 혹독하더니만 ······.' 태임이는 다음에 올 이름 붙은 추위를 속으로
가늠해 보면서 아랫목에 깔아 놓은 포대기 밑으로 파고들었다. <박완서, 미망>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촌의 실정을 조사하고 음력 2월 스무날에 하늘로 올라가는 전설 속의 인물을 '영등할머니'라고 하는데, 이 할머니가 음력 2월 초하룻날 무렵에 거센 바람을 일으킨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때 부는 바람을 '영등바람'이라고 한답니다.
그렇게 여러 날 극성맞게 불던 영등바람이 어제부터 누그러진 기색이지만
변덕스러운 제주 바다라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이번에는 언제 어떻게 부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의 여러 가지 이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풍향에 따라 다양한 바람의 이름들을 살펴보겠습니다.